[오늘 역사] 어느 에어컨 설치기사의 죽음
故 양준혁 씨
올해 8월 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던 스물일곱 살 노동자
양준혁 씨가 숨졌다. 사인은 온열질환.
한여름 무더위에 스러지는 목숨이 있다.
우리가 폭염에 그저 시달릴 때,
누군가에게는 폭염이 폭력이 된다.
노동자는 증발하고 노동만 남아
채찍으로 굴러가는 팽이마냥
어지럽고 토할 때까지 땡볕 아래 팽팽 돈다.
에어컨은 제품 배송과 설치가 패키지 상품이고
여름 한 철 에어컨 장사는 시간과의 싸움
많이 판 만큼 빨리 설치해야 돈을 번다.
삼성전자의 하청을 받은 광주의 한 설치업체는
휴식없는 작업 시간 속으로,
폭력적인 폭염 아래로 팽팽 돌렸다.
출근 첫 날 퇴근한 아들은 엄마에게 말했다.
땀이 너무 나서 주머니 속 담배가 모두 젖었어
다음 날 낮 장성 최고기온은 34.4도
아직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한 출근 이튿날
천근만근 몸이 무거운 청년 노동자는
폭염과 자본,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웠을까.
다녀오겠습니다, 짐짓 씩씩하게 인사하고 집을 나선
스물 일곱 살, 180㎝에 75㎏의 건장한 아들은
끝내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정부의 무대책에 숨통이 막힌 죽음이었다.
누군가가 에어컨 아래서 더위를 피할 때,
누군가는 에어컨을 달면서 더위에 맞서야 한다.
그가 작업 중이던 중학교 급식실에는
더운 바람 내뿜는 선풍기 2대가 전부였다.
젊어 고생 어쩌고, 그딴 말 집어치우더라도
자본의 선순환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고서야 돈이 굴러가겠느냐고
일견 맞는 말이지만, 빠진 게 있다.
소비자에게는 더위를 막을 에어컨 시장이 있지만
노동자에게는 더위를 막을 온열질환 정책이 없다는 것.
그래서 시장은 언제나 노동보다 힘이 세고,
정책은 자본보다 한 걸음 느리다는 것.
노동이 시장보다 힘이 셌다면
낮 최고기온이 34.4도에 달할 때
에어컨 설치기사에게 선풍기 2대로는 턱도 없다고,
정책이 자본보다 한 걸음 빨랐다면
작업현장엔 냉수와 그늘, 보냉 장구가 있어야 하고
체감온도 35도를 넘으면 매시간 15분 쉬어야 한다고,
이런 당연한 얘기,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터무니없는 땡볕 아래 중학교 화단에서
한 젊은이가 스러지지는 않았을 텐데.
동료들 무관심에 방치된 타살에 가깝다.
그와 에어컨을 함께 설치하러 간
광주 ○○테크시스템의 팀장과 고참
폭염이 폭력으로 변해갈 때 그들은
쉬는 시간을 요구하는 그에게
더우면 너만 덥냐, 지청구에 콧방귀를 뀌었을 테고
정책이 노동자를 방임할 때 그들은
냉각모자라도 하나 사달라 요구하는 그에게
필요하면 네가 사라, 당당히 거절했던 것이다.
급기야 2024년 8월 13일 오후 4시 40분 무렵
그가,
종일 괴롭히던 폭염에 끝내 젊은 육체를 빼앗겼을 때
어지럼증, 구토로 두 번이나 작업장을 뛰쳐나갔을 때
두 번째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화단에 쓰러졌을 때
그들은,
신입이 농땡이 친다며 쓰러진 그의 사진을 찍고
30분이 지나서야 회사에 가족 연락처를 물어
엄마에게 카톡으로 쓰러진 아들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평소 정신질환이 있었느냐
위치를 알려줄 테니 애를 데려가라 요구하다가
다시 20분이 지나 회사에 전화를 걸어
119에 신고해도 되느냐 확인을 하고
119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시간 가까이 그냥 흘 려 보 냈 다.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뛰어 간 엄마는
불에 탄 것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는
아들의 팔과 발을 보았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정작 시원한 에어컨 바람 한 줄기
애타게 갈망하다 숨졌을 아들
아침에 출근했다 새카맣게 타버린 채
누워있는 아들의 주검 위로, 그제서야
응급실 에어컨은 날카로운 바람을 토해냈을 것이다.
인생을 하루로 치면 이제 갓 열 시쯤 됐을까.
스물 일곱 살 양준혁 씨는 인생의 한낮을 맞기 전
자본주의의 땡볕 아래 숨졌다.
우리는 이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과 정책, 동료의 관심
어느 것도 그에게 쏟아지는 폭염을
막아주지 못했다. 아니,
양준혁 씨 사망사건은
여름 한철 장사에 휘둘러 댄 자본의 채찍질
언제나 현장에 부재하는 노동 정책, 그리고
사망현장을 방조한 동료 무관심이 빚어낸
타살에 가깝다.
2024년 여름, 기록적인 8월 폭염도 저물어 간다.
국회는 지난 9월 4일, 양준혁법을 발의했다.
작업 기상여건에 따라 사업주의 조치의무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8월 2일 포항, 골프장의 30대 노동자
8월 9일 여수, 공장의 50대 노동자
8월 13일 예산, 감자분류 작업을 하던 40대 태국인 노동자
자본이 내몰고 나라가 막아주지 못한 폭염 속에서
우리는 故 양준혁 씨로 대표되는 온열질환 산업재해의
슬픈 익명과 새로운 법안을 마주하게 됐다.
목숨을 건 노동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노동이라면
자연재해 정도는 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이어야 하고,
더구나 그 자연재해가
시원한 물과 바람,
그늘과 휴식만으로도
피할 수 있는 무더위였다면
적어도 故 양준혁 씨의 사인은
법의 보호와 자본의 의무
그 최소한의 테두리 바깥에서 빚어진
동료들의 냉소와 방관,
이 모든 것의 총합은 결국
자본주의의 비정함 그 자체였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개선할 때까지
우리는 이 죽음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일벌백계 처벌해서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