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2024년 9월 11일

by 들무새

퇴직 3일차.

엊그제 퇴직하고, 어제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다

저녁 무렵 아내를 꼬드겨 꼬봉이 통닭에서 치맥.

학원 끝난 막둥이도 합류했겠다, 흥이 지나쳤을까.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치맥에서 치소로 초심 잃어가는 아빠를

한심한 듯 쳐다보다가 나 먼저 갈래,

막내딸은 심드렁하게 말하고 들어가 버렸다.

집에 와서 곧장 곯아 떨어졌는데

한밤 중에 놀아달라는 딸 성화에 잠이 깼다.

그렇게 한동안 설치다가 다시 잠들고

눈을 떠보니 아침 8시.


퇴직하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일상의 계획과 긴장을 잃지 않겠다는 것.

더구나 어제 치맥하면서 아내에게

낼부턴 도서관 갈거야,

큰소리 쳐 둔 바가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냥 뭉갤까, 고작 퇴직 3일차 잖아

잠깐 고민도 해봤지만

아내와 종일 얼굴 맞대고 함께 지낸

어제 하루가 떠오르자

잠결과 숙취를 물리치고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후다닥 털고 일어나 대충 씻고나니

속은 쓰린데 밥 달라는 말도 안 나온다.

막둥이 등교시간에 맞춰 도서관에 왔다.

그렇게 마주한 서가의 빽빽한 책들, 문득

서점에서 책냄새 맡으면 어지럼증이 난다는

공부와 담쌓은 조카녀석 말이 떠올랐다.

어지럽다기 보다 막막했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왔다.

그럼 왜 읽고, 쓰려.. 아니,

이건 나눠서 생각해보자.

먼저, 왜 쓰려고 하는가.

내 생각과 생활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

그런 글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

그럼, 왜 읽으려고 하는가.

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생각을 채워야 한다.

머릿 속에 길어 올릴만한 생각이 고갈됐고,

그 생각을 글로 지어내는 일도 익숙치 않다.

그래, 그럼 일단 읽자. 무엇을 읽을까.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가 두 명이 떠올랐다.

함민복, 곽재구


대학시절부터 좋아하던 작가들인데다

따뜻한 시와 산문을 짓는 이들이어서

저 많고 낯선 책들 중에서

잊고 지내던 옛 친구를 떠올린 듯 반가웠다.

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곽재구의 포구기행 이렇게 두 권을 꺼내와서

그 중 몇 개의 산문을 골라 읽었다.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이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된다는

함민복 시인의 작품에는

유난히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단연 백미로 꼽히는 시는

시인이 어머니와 단 둘이

설렁탕 먹는 장면을 그린

눈물은 왜 짠가, 라는 산문시이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울컥해지는 시

그냥 일기처럼 편하게 써내려 간

그 문장들을 읽고 또 읽다가

내 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 글의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글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치명적인 결함이다.


왜 그럴까,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글이 곧 사람이라고,

오랜 직장생활 많은 풍파와 상처 끝에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마음의 단속이 굳어져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 쓰는 글에도

나를 드러내지 않게 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둘째, 진솔함이 빠져있으니 꾸미는 말이 늘어난다.

나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니 문장의 기교만 늘어난다.

쓰면서도 공허한 문장들이다.


셋째, 꾸미려만 하다보니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손 끝에 힘 빡 주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솔직한 얘기는 마음먹기가 어려울 뿐, 쓰기는 쉽다.

넷째, 너무 길다.

이건 기자 시절부터 편집부에 악명 높았던 습관이다.

진솔하고 간결하게. 가볍고 짧게.

하, 그런데 오늘도 길다.


왜 쓰는가, 어떻게 쓸까 생각해 보았으니

내일은 무엇을 쓸 것인가, 정해보려 한다.

더 짧고, 간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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