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Jan 13. 2021

공무원인 줄 알았던 박물관 '공무직'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8년 8월, 사학과 일반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일본 대학 박사과정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졸업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무겁게 하진 않았다. 2년 6개월, 지난했던 논문 쓰기. 하루 평균 꼬박 5~6시간을 책상에 있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신나기만 했던 졸업 후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 사는 모두에게 그렇듯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마음 편하기란 쉽지 않았다. 졸업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일본 유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인 중 일본 생활 및 유학 유경험자는 없었다. 대학과 대학원 기간 동안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홀로 망망대해를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느라 새벽 4시까지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프로 통학러였던 나는 자취 경험도 없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에 홀로 발을 디딜 생각을 하니 끊임없이 두려웠다. 대학원 졸업 전에 3박 4일 도쿄를 홀로 여행했던 짤막한 경험만이 당시의 나를 지탱해 주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무소속의 시간을 홀로 견디며 일본 정부 장학금인 문부성을 준비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일본 유학의 현실을 알려줄 멘토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했다. 일본 유학 카페를 하루에도 수없이 들락날락하는가 하면, 대학원 시절 흠모했던 도쿄대를 졸업한 교수님을 무작정 찾아가 3시간 면담도 했다.

  결국 일본 유학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일본 워킹홀리데이. 일단 발 붙여 살다 보면, 하루하루 쫓기는 절박함이 원동력이 되어 일본에서의 내 삶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답 없는 답이었다.

결국 쓸 일 없이 만료되어버린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

  일본 워홀을 시작하려면 기본 700만 원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 폭풍 알바를 시작했다. 대학원 때도 해왔던 역사토론교실 강사를 포함하여, 승정원일기를 감수하는 일, 초등학생 대상 역사 학습서 집필 등 다양한 일을 병행해 왔다. 당시 나는 목표가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저 불안한 시간들을 외면하고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 온 것 같다.

  허공에 쏘아 올렸지만 어디서 터질지 모를 방황하는 폭탄과도 같은 시간이었달까.

석사논문 정말 쓸 수 있는 걸까, 라는 게 고민이었던 시절 선배들과 함께 떠난 통영 여행에서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일본 생활을 찾아볼수록 마음 한켠에서는 '포기'라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웃프게도, 내가 일본 생활에서 제일 걱정되었던 것은 일본에 그리도 많다던 바퀴벌레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떨어져 JLPT N1이 있긴 하지만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낯선 크기의 끔찍한 벌레와 조우할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마음은 지옥이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덤덤히 알바를 하던 중, 무심코 '나라일터' 포털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공고는 '전시해설부 전문해설사 공무직'. 평소 강의를 좋아라 했던 나에게 안성맞춤이 아니던가. '역사의 대중화', 고3 시절 다이어리에 휘갈겨 써놓은 작고 초라한 나만의 신념이었다. 홀로 연구실에 틀어박혀 쓰던 글을 모두가 알기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그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줄 수 있기를 꿈꿔왔던 나로서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 3차 해설시연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열심이었지만, 불합격했을 경우의 도피처로 '나의 진정한 목표는 일본 박사 진학'이라는 생각도 내려놓지 않은 채였다. 합격 명단을 열어보았을 때, 가운데 *과 함께 표기되어 있는 나의 이름을 보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신입사원 교육 때 이런 오글거리는 사진도 남겨 놓은 걸 보니, 꽤나 신이 났던 모양이다.

  비록 내 전공 조선시대와 관련이 깊은 곳도 아니고, 평소 박물관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어디엔가 소속되었다는 안도감만이 나를 가득 채워주었다. 공무원과 비슷한 공무직이라는 타이틀도 뭔가 있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음, 그런데 공무직이 뭐지? 합격되고 나서야 공무직의 뜻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웬걸, 무기계약직과 같은 말이란다.

  생각지도 못한 박물관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