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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Mar 01. 2022

역사를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내 생을 사랑하게 하는 당신의 삶

입사 3년차, 매너리즘에 빠지는 날들이 많다. 패기넘치던 꿈은 폐색 짙은 현실에 파묻혀 그곳에 있었는지 조차 망각하기 일쑤이고, 흘러가는 시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속도를 더해가니 "나는 잘하고 있을까" 늘 되뇌이게 된다. 뒤채이는 고민들 속에서 그나마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비로소 집중할 수 있는 건 전시를 준비할 때가 아닌가 싶다. 


눌어붙은 묵은 밥, 나에게의 당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작가의 시집 이름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니, 대상에 대한 사랑이 이만큼 물씬 풍기는 표현이 또 어디있을까. 무엇을 '짓기' 위해선 재료가 풍성해야 한다. 당신을 날마다 사유했기에, 당신이란 재료는 머리 속에 차고 넘친다. 많고 많은 당신의 재료들은 날마다의 양식이 된다. 양식은 생존을 위한 가장 1차적인 요소가 아니던가.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박준의 당신은 무엇이 되려나. 세상살이에 지쳐 이제는 묵은 밥처럼 내 마음에 눌어붙어 있어 그 존재조차 가늠하기 어렵지만, 나의 당신은 역시나 나의 오래된 연인, 역사가 아닐까 싶다.



첫인상, 세피아 속 그대들 

당신을 처음 만난 건 세피아 색상의 사진들이 그득한 교과서 속이었나 보다. 오지선다형, 적확한 답안 하나만 고르면 복잡해 보이는 당신은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생소한 이름들은 물론, 그 밑에 타래로 딸려 나오는 방대한 내용을 머리 속에 일관된 연표로 그려내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들여 당신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세피아 색상 속 어떠한 사연을 담고 있을 지 모를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느라, 나는 그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호기심이었을지, 오기였을지,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평생의 나를 먹일 양식이 될 줄이야, 이래서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찾아온 권태기, 알 수 없는 당신의 참모습

대학원에 와 보니, 당신과 내 사이는 참으로 복잡해져 있었다. 호기심만으로도 충만했던 초창기 우리 사이는 손쉬웠다. 방대한 이야기 속 숨어있을 사연들을 호기심의 힘으로 일일이 찾아낸 뒤, 그 흐름들을 엮는 단단한 연결고리로 만들었다. 수백년에 달하는 당신의 이야기는 그렇게 내 머리에 각인되었다. 어떠한 문제가 나와도 내 치밀한 관심으로 완성시킨 당신의 맥락을 잊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다. 

당신과 내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내가 당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대학원에 들어간 후로 미처 몰랐던 당신의 이면들이 내 의심을 부추겼다. 당신은 결코 일관된 모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알아낸 당신의 모든 것들은 또 다른 당신의 사실들로 흔들리고 전복되었다. 

내가 완전히 안다고 생각했던 당신에 대해 공인된 사실들은 실로 누군가의 주관과 해석에 불과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건, 거대한 누군가였다. 힘이 센 그 누군가는 당신의 한 면모 만을 치켜세워 마치 그것 만이 당신의 참모습인 것 마냥 꾸며내었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어린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 당신의 참 모습을 달달 외웠고 좋아했고, 이로써 당신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기에 자만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제되었던 당신의 많은 이면들이, 숨겨져 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당신의 진정한 참모습을 알려주었다. 생소했기에 피하고 싶었지만, 알면 알수록 당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촉매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랜 권태기를 이겨내었고 결국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은 당신

시간이 지나고, 당신을 알리는 일이 내 업이 되었다. 당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당신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많은 이들로 하여금 실감하게 하고 싶었다. 

모두는 제 인생을 하나의 점처럼 살고 있다. 오늘과 내일로 점철된 삶, 노후를 걱정하거나 현재와 미래의 성공을 가늠하며 불가피한 장애요소로서의 과거를 회상할 때 외에는 모두들 점에서 벗어나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 당신은 이러한 삶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켜준다. 점을 길다란 여러 개의 선으로 늘려주고는 방대한 삶의 사례들 속에서 스스로들의 삶을 빗대어 보게 한다.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삶들을 보다 보면, 각자의 궤도 안에서 모두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며 살아온 궤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에 대해 내가 많이 누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보다 멀찍이 떨어져 내 삶을 관망하면서 알 수 없는 인생의 궤도를 배회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법을 배운다. 


당신을 통해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이렇게 당신은 나를 하루하루 살게 한다. 


당신을 짓는 일은 힘겨우나, 그렇게 지어 먹어볼 때면 그래도 생이라는 게 살아질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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