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갈라진 살갗 속에 흙이 어찌나 깊이 박혀 있는지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는 양손을 깍지 끼고 기도하듯이 탁자에서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평생 이렇다 할 만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6학년을 마친 뒤 농사일을 시작했지. 젊었을 때는 학교 교육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땅은 점점 건조해져서 농사짓기가 힘들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중략)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깍지 낀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두 손이 식탁 위로 툭 떨어졌다. "무슨 생각이냐면......." 그는 자신의 손을 향해 험상 궂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는 가을에 대학에 들어가거라. 여긴 네 어머니랑 내가 알아서 할 테니."
-18쪽
스토너는 자신이 무엇을 할 생각인지 아버지에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자신이 중요한 목표라고 판단한 것이 옳다는 감정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듯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아버지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거듭된 주먹질을 받아들이는 돌덩이처럼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야기를 끝낸 뒤 그는 깍지 낀 양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리고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91쪽
어머니는 그의 정면에 있었지만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을 꾹 감고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져 있고, 주먹 쥔 손은 양뺨을 누르고 있었다. 스토너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마음 깊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좀처럼 울지 않은 사람이라 어색해하면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94쪽
존 윌리엄스가 쓰고 김승옥 번역가가 옮긴 소설 '스토너' 중에서
오래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읽다가 반납 기한에 쫓겨 미처 완독하지 못한 소설입니다. 요즘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바이럴되어 서점 어디든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더라고요. 언젠가 꼭 다 읽어야지, 결심할 만큼 참 좋았었던 책이라, 그 길로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그가 영문학 교수로의 길을 꿈꿀 수 있었던 건 부모가 대학 교육을 권했기 때문이었죠. 물론 그의 아버지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농과 대학으로의 진학을 권했던 거지만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스토너는 우연한 기회로 영문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 부모의 기대를 배신해 버리고 맙니다. 부모는 아들의 괘씸한 결심도 모른 채 아들 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궂은 노동을 군말없이 견뎌 왔죠.
시간이 흐르고, 스토너는 없는 시간을 쥐어 짜 허름한 몰골로 졸업식에 온 부모에게 결국 자신의 뜻을 전합니다. 영문학 석박사 과정을 밟겠다는 것이었죠. 충격에 휩싸인 부모는 침묵 속에서 그 말을 듣다가 결국엔 "네 어머니랑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며 아들의 손을 들어 줍니다.
그렇게 스토너는 '부모의 얄팍한 등을 밟고' 가난한 부모는 평생을 경험하지 못할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러고는 부모와 영영 헤어지죠. 그의 마음 속엔 부모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둥지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제 갈 길을 갈 수밖에요. 그 길을 터 준 부모의 희생과 사랑을 동력 삼아서요.
이 내용은 소설의 1/10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초장에 덮지 않고 쭉 읽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부스터로 손색이 없죠. 주인공 스토너와의 라포를 형성하는 첫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여러분은 어떤 삶의 장면을 떠올리셨나요? 소설 속 문장이 그려내는 생생한 풍경이 내 삶의 경험과 겹쳐질 때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