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다 못 읽을지라도, 책을 사는 행위는 그 자체로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책을 산다는 건, 그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저자와 편집자, 서점 관계자 등 여러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고, 감사를 전하는 행위니까. 물론 그런 소중한 책을 꼭꼭 씹어서 잘 이해하고 소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설령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책을 구매함으로써 그 책을 만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가치 있는 기여를 한 셈이니까.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미리 사놓고 쌓아놓은 다음 필요할 때 꺼내 읽는 것이다. 그러려면 읽지 않은 책이 늘 여유 있게 자신의 주변에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사놓은 책 중에서 그때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내가 언제든 읽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미리미리, 그리고 충분히 쌓아놓자.
자기만의 방에서 25년에 발행한 책 '에디터의 기록법(읽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 10인의 노트)' 중에 '프로젝트 썸원' 창립자 겸 에디터 윤성원님의 글에서
언제 써도 아깝지 않은 돈이 있어요. 책을 살 때 쓰는 돈이 그래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제품들을 살 때에도(가령 식품, 화장지, 세제 등) 손이 벌벌 떨리는데, 유독 책을 살 때는 구매 버튼을 향하는 손가락이 하이패스를 탄 것처럼 유난히도 매끄러워요.
왜 그럴까요, 이 문장을 보고 새삼 알았어요. 책을 산다는 건, 그 책을 만든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덤으로 얻는 것이라는 걸. 책을 만들어 본 사람은 알아요. 그 공정이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지.
어떤 이들은 작가가 쓴 '쌩 글'이 그대로 책이 되는 줄로만 알기도 해요. 하지만 작가의 글과 책 사이에는 불특정 다수의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있어요.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기본은 3번 많게는 10번까지도 교정을 봐요. 그 시간 속에서 작가의 거친 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정한 글이 되죠. 디자이너는 작가의 글과 어울릴 만한 책의 표지와 내지 디자인과 심지어는 표지와 내지로 쓰일 종이 종류까지도 수없이 고민하고 수정해요. 이들은 작가의 글을 세상과 사회에 맞게, 먹고사니즘으로 바쁘디 바쁜 사람들에게 최대한 가 닿을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탄생시키려 무던히도 애를 쓰는 거예요.
책은 그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땀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오브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정도면 제작비보다 조금 높게 책정될 뿐인 책 가격이 얼마나 '갓성비'인지, 조금은 설명이 되었을까요.
문득 책들이 쌓여 있는 제 방을 떠올려 봤어요 . 책 한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내 방 책장과 책상 위에 많은 사람들이 구깃구깃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오늘도 그 사이를 더듬어 봐요.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내 속에 꼭 맞게 들어올 사유와 문장을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