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밥상이 당신과 주변을 병들게 한다

by 이태근

지금 당신 앞에 차려진 밥상을 보라


그 밥상이 가족이 둘러앉은 당신 가정의 식탁이든, 친구나 직장인끼리 외식을 하는 음식점 식탁이든, 특별한 날에 회식과 잔치를 벌이는 특급 음식점의 식탁이든, 차려진 밥상의 음식을 자세히 보라


겉보기에는 맛있고, 영양가 있고, 화려하고, 양질의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보이지만 은폐되고, 숨겨지고, 간과되고, 위장된 허위의 장막을 벗겨내면 그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 음식의 재료와 그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철저히 파헤치고 뒤집으면 당신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숟가락을 내려놓을 것이다. 콩, 옥수수, 감자 같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 원료가 되어 만드는 온갖 식품, 조기 성장 조기 출하를 위한 항생제, 성장촉진제 투여, 방부제를 넣은 생수, 장거리수송과 보관을 위한 살충제, 방부제 살포, 음식점에서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 설탕, 소스, 혼합 양념 투여, 공장식 축산 가축의 비참한 환경과 항생제사료, 잔인한 도축,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내가 텃밭에서 기른 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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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사실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며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것인가.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 앞에 차려 지는 밥상을 바꾸기만 하여도 그 작은 변화가 당신의 건강과 가족, 사회,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인식은 경험된 현상이며 깨달음의 과정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당신의 참된 모습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선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면 밥상을 바꾸어라. “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칸트도 말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빛의 한 방울일지라도 태양과 같은 무진장한 풍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습의 굴레에 매어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진실의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갈망하지 않는 자들, 그저 관습에 의해 먹고, 자고, 싸고, 벌고, 쓰고, 버리는 무수한 사람 중의 한 사람. 자신이 바라는 바의 진실을 자신을 위해 만들고 그곳에 포근히 잠들 수 있는 자에게는 인생이란 얼마나 지내기 쉬운가? 그러나 그러한 자들은자신이 만든 포근한 침대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남들의 위에 태양의 빛을 널리 퍼지게 하려면 자기 안에 그 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들의 무지와 관습과 허위를 직시하려면 자기 안에 그 지혜와 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기존의 것들에 집착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영예롭게 하고 삶을 풍족하게 하는 선택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건강하고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이며 창의적일 수 있는데 그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

새장에 갇혀 있지만 문이 열려 있어서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는 새가 그렇 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 일까? 인간이건 동물이건 간에 그렇게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바로 관습이다. 관습을 밥상의 선택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실제로 관습은 사상이 되고, 문화가 되고, 전통이 되고, 교과서가 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밥상 을 선택한 것과 그 반대의 사랑의 밥상을 선택하는 것에 의해서 당신과 가족, 사회 그리고 세상과 자연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식품오염과 환경파괴, 질병 관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그 피해가 너무나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며, 서서히 생명과 자연을 좀먹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들의 관습에 의해 그러한 사실들이 무시되고,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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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고통을 함께하며, 지금의 세계화는 새로운 천 년의 위험이 세계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을 문화와 오지가 사라지고, 도시와 농촌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으며 세계 전역에서 산업가공식품이 없는 지역을 찾아볼 수가 없다.

햄버거와 콜라, 아이스크림은 티베트 라다크 마을에서 보잉737기 내에까지 비치되어 있으며, 살충제와 항생제, 성장촉진제는 전 세계 여성의 모유에서부터 북극의 흰곰에게까지 공평하게 침투해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가축사료에서 인간의 밥상까지 올라온 것은 「아! 옛날이여」가요와 함께였다.

정제된 흰 밀가루 음식인 빵, 국수, 라면은 우리 가족 모두 그리고 스님도 국방위원장도 좋아한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그리고 살균제가 풍부하게 함유된 삼계탕은 명품화되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수출 길에 오르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동태탕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식품이 아닌 화학첨가제가 함유된 가공식품이 밥상에 놓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서로 성질이 다른 음식이 같이 차려져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알칼리성 식품인 곡식, 채소와 전혀 성질이 다른 산성 식품인 고기는 같이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소화 작용의 철칙을 누구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먹는 과일은 독이 된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고 잘 먹었다고 감사하고 칭찬하는 무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곡식, 과일, 채소든 고기든 모든 식품은 생으로 먹어야 그 식품의 영양소, 효소, 생명에너지가 파괴되지 않는데, 수백 년 수천 년의 관습, 잘못된 음식 문화에 의해 불로 익혀서 죽은 시체, 노폐물을 먹는 화식 문화에 의해 결국 기력이 빠지고 병이 들며, 사랑도 행복도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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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근본적으로 치아 구조와 장의 구조가 채식을 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육식과 잡식을 감행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소화관의 질환에서 시작되어 전신의 질환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육식도 불가피한 경우 살기 위해서는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자연식을 하는 동물의 경우는 그래도 좋으나, 이 시대는 공장식 축산으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로 사육되고 있으며 그 물질이 그대로 인간의 몸에축적되게 된다.

그런데 이 시대는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으며 또한 먹는 재미로먹는다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어야 하는데 즐기기 위해서, 먹는 재미로 먹는다는 것이다. 섹스란 종족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것을 즐기기 위해, 재미로 해서는 퇴폐가 되듯이, 먹는 행위도 생존하기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것을 즐기기 위해 먹는 재미로 먹어서도 안 되며, 그래서 요리를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식색이 인간의 가장 큰 본성이듯이 식욕과 색욕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 그것을 즐기며, 재미로 하게 되면 결국 인간과 사회가 병들고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당신에게 다시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섹스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행위이며, 음식을 먹는 것 또한 그 음식을 사랑하고, 그 음식으로부터 사랑받는 행위이다.


지금 대다수 사람에게 알리지도,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슈퍼마켓 선반의 3분의 2를 유전자 조작 식품이 차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에 있는 빵, 과자 제품에서 500종이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 앞에 차려진 밥상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이다.

당신의 밥상을 사랑, 감사, 기쁨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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