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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국봄 Sep 29. 2021

하루가 내 삶의 전부라면

프랙탈

요리, 빨래, 설거지, 산책 등을 할 때는 항상 무언가를 듣는다. 손과 눈은 바쁜데 귀가 심심해서 들을 것을 찾게 된다. 그날은 빨래를 개면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의 말장난과 엄청난 텍스트 분석 능력에 감탄하면서 듣던 중에 ‘프랙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교양 강의 때나 들었던 프랙탈이 갑자기 왜 나올까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순식간에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의 형상을 보이는 구조를 ‘프랙탈’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눈이다. 눈을 확대하면 작은 구조와 전체 구조가 같은 모양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프렉탈을 인생에 대입해서 말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하루가 내 평생의 삶을 축소한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다. 가벼운 충격과 뜨거운 자극을 받았다. 니체의 영원 회귀설을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때 이후로 하루를 조금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안 쓰던 플래너를 쓰면서 하루를 계획하고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번 설치와 삭제를 반복하는 스마트폰 잠금 앱도 다시 설치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하루를 바꾸려고 노력했고 내 인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지인을 통해 인턴 기회를 얻었고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을 하면서도 하루를 알차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었기에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고, 주말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계획으로 시간을 보냈다. 내 옆에 있는 그녀는 신경 쓰지 못한 채 말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던 그녀가 떠나고 나를 돌아봤다. 하루가 평생이라는 명제가 잘못 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그건 아니었다. 단지, 무언가 큰 것을 놓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를 구성하는 작은 부분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잘 보내면 내 하루는 보다 나아지고, 내 삶도 변해가겠지 생각했다. 그 시간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태도, 말투, 표정 등 사소한 부분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나는 큰 숲 속에서 풀 한 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을 내는 사람이었다. 행복해 마땅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서툴지만 아직도 시간을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하루를 살아가면서 가끔씩 미소 지으려고 노력한다.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지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편안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 시간을 구성하는 나의 행동과 태도를 가꾸다 보면 점점 내 삶이 나아질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은 미소짓는 게 어색하지만 미소가 자연스러워질 때쯤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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