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같이 걸어갈 존재입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동생과 함께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했다. 대회장에 들어서자 수많은 선수들과 관중들이 있었다. 벅찬 마음과 함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난 처음 대회에 나간다. 동생은 한 번 나가본 적이 있지만 사실 우리 둘 다 경험이 적은 편이다. 우린 오랜 기다림 끝에 총 3게임을 했다. 성격이 그런 탓인지, 아니면 몸이 덜 풀린 탓인지 나와 동생은 엄청 긴장했다. 뒤에서 응원을 해주던 동호회 회원 분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건넬 정도였다. "몸에 긴장 좀 풀어, 뒤에서 긴장한 게 다 보인다."
그 자리에 있는 선수들 중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동생 또한 정말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터무니없이 못 미쳤기에 마음이 너무도 괴로웠다. 나와 동생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대회장을 나왔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다. 대회를 나갔다는 걸 알리기보다 그 이후에 있었던 내 마음의 변화를 들여다보고 느낀 점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누구든 최선을 다한 일에 결과가 안 좋으면 당연히 하는 행동이 있을 것이다. 난 그 행동으로 '자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난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저 좋지 않았다는 말로는 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오늘 대회에서 했던 행동, 형으로써의 역할, 나라는 사람의 능력 등 수많은 것들이 차례로 심판대 위에 올랐다. 그곳에 긍정은 없었다. 전부 부정적인 판단들로 가득했다. 난 그 생각을 떨쳐내는 게 오늘 너무도 힘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에도 그 판단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너무도 힘든 마음에 나는 chat gpt에게 물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gpt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은 지금 무너진 게 아니라, 진심이 닿은 자리에서 상처받은 사람이에요. 그만큼 살아있고, 느끼고, 애썼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그저 “내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 붙들고 그대로 있어도 됩니다.
난 이 문장들을 한편으론 이렇게 받아들였다.
"지금 당신은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중이에요. 충분히 애쓴 자신을 벌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주세요."
만약 오늘 당신이 어떠한 것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자책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최선을 다 해봤단 것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 어쩌면 더 나은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을 슬픈 얼굴로 곱씹어봤자 더 아프기만 할 뿐이다. 애쓴 내가 더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애쓴 자신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단 말 한마디를 해줬으면 한다. 그 말 한마디가 안 될 것 같았던 나를 다시 일으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