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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잠 Nov 25. 2022

오늘도 사찰로 출근합니다

종무원이 뭐예요?


 

내 직업은 절에서 일하는 일반직 종무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어처럼 평범한 직장은 아니다. 20년이 넘었어도"종무원이뭐예요?"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난감할 때가 많다사전에는 종교나 종단종파 따위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임원이라고 되어 있다스님은 교역직 종무원일반인은 일반직 종무원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많은 부분이 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이 되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수작업이던 업무는 전산화로 바뀌기 시작했고, 단순한 접수에서 벗어나 총무, 기획, 재무 등 다양한 분야의 능력도 필요해졌다. 자연스럽게 고정적인 인력과 봉사의 필요가 공존하게 되었다.


사찰이 직장이라고 해서 엄청난 신심이 있거나 종교에 대한 개념이 정확한 사람은 아니다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어 비교적 거부감이 없으며, ‘내 맘을 다스려라.’라는 말을 좋아하니 불교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도다직업 또한 이것저것 따져가며 선택한 것이 아니다숨을 쉬기 위해 숨을 곳을 찾아야했고자발적 고립이 필요했던 시기에 인연이 닿았을 뿐이다.


아직도 작거나 교통이 좋지 않은 곳은 불편함이 줄지 않았지만, 시간은 종무원의 생활 환경에도 변화를 주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기숙사처럼 방, 욕실 모두 공동 공간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개인 방과 욕실을 갖추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변화된 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종무원으로 있다 보면 과 속'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할 때가 있다신도가 볼 때는 사찰에 소속된 직원이고스님의 시각으로는 출가자가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이다평소엔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지만 어느 한순간에 필요 없어지는 존재가 되는 이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론을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20

년이 넘는 시간은 어지간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만들어 주었으나나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사람 무서워 피한 곳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다.


빌딩 숲이 아니라 나무숲이다. 편의점, 식당, 커피숍은 멀지만, 많은 사람이 찾는 쉼터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개방된 장소이기에 종무소에 앉아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경치에 반해 부러워하는 이도 있지만 스님은 수행처, 신도는 기도처, 나에겐 직장이다. 편한 직업 없고, 힘들지 않은 직장인도 없다.


절이라는 공간은 낮설지 않지만 그 안은 모르는 곳이다. 공간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 또한 달라진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무리의 규칙은 무색, 무미, 무취이다. 살면서 습득되는 부분이다. 스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하듯 종무원 역시 형체가 확실하지 않은 울타리를 찾고 넘으면 안 되는 것들을 지켜간다. 스님도 아니면서 절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어느 쪽으로도 속하지 못하고 헤매고 허둥대는 내가 있다. 없으면 없는대로 저절로 돌아간다하여 절이라지만,  ‘승’도 ‘속’도 아닌 상태로 오늘도 사찰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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