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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잠 Dec 13. 2022

절은 절간같이 조용하지 않아요

절에 근무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법당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일이다. 특히, 나른한 봄바람이 부는 날은 낮잠 자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법당의 큰 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피해 기둥에 기대앉으면 향냄새 가득 배인 커다란 공간이 나만 오롯이 안아주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 따뜻하고 아늑한 행복의 시간을 자주 느낄 수 없다.     

사찰은 신도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곳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뒤따르는 일도 많다는 뜻이다. 사찰 자체의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기본이며, 오고 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도 업무다. 열 사람이 다녀가면 열 사람이 다르고, 백 사람이 다녀가면 백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인에 맞춰 이야기를 들어 주고 대응해야 하는 일은 육체적, 정신적 양쪽 모두의 소모가 엄청나게 크다.  


예전에 다른 사찰에서 함께 일한 직원은 “왜 이렇게 일이 많아요?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요.” 한숨을 쉬며 두 달 만에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그 직원이 어떤 생각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귀촌의 낭만을 생각하고 도시를 떠났다가 너무 많은 일에 지쳐 되돌아오는 사람처럼 고즈넉한 사찰 풍경에 환상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힌 것은 아닌가 짐작만 해본다. 실제로 일은 많고 생활은 불편하니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종종 그 환상을 오래전 TV에서 보았던 백조의 모습에 비유한다. 백조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은 우아했지만,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물 밑의 두 다리는 민망할 만큼 촐싹거리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 중에 만나는 한가로운 농촌의 풍경을 보면서 마음은 편안해지지만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모종 심기, 눈 깜빡하는 사이에 자라는 잡초, 벌레로 망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시기에 약 뿌리기 등 돌아서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절대 한가롭지 않다. 일 년 내내 어떻게 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밥상 위에 올리는지를 생각하면 백조와 다를 게 없다.     


사찰도 마찬가지다. 신도가 적은 사찰은 좀 덜 바쁠지 모르지만, 그동안 내가 일했던 곳들은 관광객이 많은 사찰이라 더 바빴는지 모른다. 규모가 있는 절은 신도 수만큼이나 신도가 아닌 사람도 많이 다녀간다.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그사이에 전화벨도 울린다. 신도들은 주로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이 많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과 이야기할 때는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며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은행처럼 번호표가 있으면 좋으련만… 손오공이 되어 머리카락 뽑아 분신술이라도 쓰고 싶은 적이 여러 번이다.


절에서 아침을 먹는 시간은 대부분 5시 반에서 6시 사이이기 때문에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새벽부터 일어나 스님들과 직원들의 아침을 준비한다. 점심은 몇 명이 올지도 모르는 방문객의 음식까지 해야 하니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CCTV로 사찰 내부를 둘러보며 대충 인원을 파악하지만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 있다가 우르르 나오는 것처럼 밥시간이 되면 깜짝 놀랄 만큼 사람이 많아진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면 정신 차릴 틈 없이 다시 저녁 준비를 한다. 법당 관리를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번 법당을 왔다 갔다 한다. 오전에 1만 보는 거뜬히 걷고, 하루에 2, 3만 보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찰에는 큰일뿐 아니라 티는 나지 않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들이 많다. 한 스님은 사찰에서 일하는 것이 놀려고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수 있지만, 일을 하려고 보면 할 일이 수두룩하게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사찰이란 공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롭게 보일 수 있지만 이곳도 사회를 구성하는 한 공간이다. 한 번씩 방문하며 느끼는 모습은 자연과 함께 있으니 보기 좋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편안함이 있어서 좋아한다. 하지만 하루만 집을 청소하지 않아도 뭔지 모르게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찰도 매일 관리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나는 곳이다. 한가롭고 정갈한 도량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계절을 산다. 조용해 보일 뿐 절은 절간같이 조용하지 않다. 조용한 날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어느 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스님이 농담하듯 한마디 하셨다.

“절간처럼 조용하네.”

말을 많이 한 날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쇳소리를 내며 우스갯소리로 대답했다.

“스님 여기가 절간인데요. 방금 쓰나미가 지나갔고 아직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절간처럼 조용하다고 하시면 여기는 어디인가요.”

“쇳소리 내지 말고 차 마시러 차방으로 와.”

스님은 웃으시며 먼저 차방으로 건너가셨지만, 나는 숨을 고르며 한참을 넋 놓고 앉아있기도 했다.      


오랫동안 절에서 일을 했지만 내가 법당에 올라가 낮잠을 잔 경험은 몇 번 없다. 낮잠이라고 해봐야 꾸벅꾸벅 30분 정도인데 그 시간을 편하게 있던 적이 없다. 깜빡 잠들라치면 전화가 오거나 반드시 방문객이 있었다. 우리에게 한가로운 날이 자주 있다면 나는 꽤 많은 시간을 법당에 널브러져 낮잠을 자는 일에 쓸 것이다. 절간처럼 조용한 날을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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