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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잠 Oct 03. 2023

‘수리수리 마수리 얍!’


‘수리수리 마수리 얍!’


만화에서 본 것도 같고, 책에서 읽은 것도 같지만 이 말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마법 소녀라도 된 것처럼 외치고 다녔다. 누구라도 어릴 때 한 번 이상은 주문으로 외웠을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도 장난삼아 말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이 말을 만난 곳은 좀 엉뚱한 곳이었다. 어릴 때 보았던 만화도 아니고 읽었던 동화속도 아니었다. 왜 이 말이 여기서 나와? 놀랐던 이유는 천수경이라는 불교 경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구업 진언, 수리 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경전의 한 구절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뜻을 풀이하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 수리 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였다. 제일 쉽게 지을 수 있는 죄가 입으로 짓는 죄일 것이다. 입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하라는 것은 말로 지은 죄를 깨끗히 하라는 의미와 동시에 입으로, 말로 죄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사람들과 만나면서 유난히 피로감을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의 대부분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만났거나 내가 말을 많이 한 날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 들어야하는 입장에서 피곤하다. 내가 말을 많이 한 날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눈썹 끝에 밥풀을 달고 걷는 기분이다. 분명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을 거라는 생각에 무슨 말로 실수를 했을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 dani_franco, 출처 Unsplash


많은 책에 조심해야 할 사람 중 첫 번째도 내 편인 척 말 옮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도 조심해야 하지만 말로 죄를 짓는 사람을 구별해서 피해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생활의 범위가 넓어지고 관계가 많아지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누군가의 험담을 듣는 일이었다. 때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뒷담화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부터 사람을 가려서 사귀라고 하셨다. 그 첫 번째가 내 앞에서 없는 사람을 험담하는 사람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험담하는 사람일 수 있다며 그런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며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너도 절대 그러면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이상하게 험담이 오가는 자리는 피할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피하지 못한 그 시간은 고스란히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친구를 만나 장난처럼 말을 건넸다.

“입 씻어주는 진언 말고, 나쁜 말 들은 귀 씻어주는 진언은 없어?”

불교를 전공하고 같은 일을 하는 친구라 정구업진언을 이야기하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넌 전공도 했잖아. 나보다는 아는 것도 훨씬 많을거 아냐. 빨리 기억해봐."

“아, 그러게. 있지 않을까? 없나? 없으면 정이업진언으로 바꿔. 정이업진언 수리수리 마수리. 그러면 되잖아.”

구(입)를 이(귀)로 바꾼 친구의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고, 나는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끔 정이업진언 수리수리를 외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말은 가장 필요한 수단이면서 조심해야 하는 수단이다. 말은 풍선처럼 부풀기도 하고 때로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기도 한다. 한 번 입을 통해 나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했다. 반드시 누군가는 상처받을 것이고 피해를 보게 된다. 내 뜻과 다르게 전달되어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말은 못하면 불편하지만 후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언제나 신중해야 하며 책임이 따르는 것이 말이다. 언제부터 ‘수리수리 마수리’가 마법의 주문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릴 때 소원을 말하기 전에 외쳤던 주문은 깨끗한 입으로 소원을 말하겠다는 의미에서 참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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