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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잠 Sep 30. 2023

사찰의 명절



사찰의 명절은 바쁘다.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절에 차례를 맡기고 참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두 명이 참석하는 날이 사찰의 정기적인 기도일이라면, 명절은 가족이 참석하는 날이다. 방문객 수는 몇 배로 늘어나고 주방과 법당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은 수면시간의 반은 반납해야 한다. 주방에서는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탕국을 끓이고, 방문객의 점심 식사 준비까지 하느라 정신없고, 법당에서는 과일을 괴고 음식을 날라 단을 차리고 사무실에선 위패를 만들어 세우고 축원문을 만들고 행사 전체에 빠진 것이 없는지 점검한다. 당일 방문자의 접수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차례 음식 준비하기, 상 차리기, 방문객의 음식 대접까지.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엄마이기도, 딸, 아들인 사찰 일꾼들은 명절 연휴 가족과 보내기를 포기하고 정신없는 보낸다.


절에 차례를 맡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년 전에는 딸이 부모의 제를 지내고 싶을 때, 위패를 절에 모셔 놓은 경우, 개인 사정으로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새로운 이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대가 바뀌면서 집안의 제사를 준비해야 하는 며느리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기도 했고,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집안의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사람들도 있다. 높은 물가 부담에 신청한다는 이유도 생겼다. 대부분 사찰에서 받는 차례비는 10만 원이 평균적이다. 준비부터 식사까지 해결되니 선택하기 쉬운 방법일 것이다. 사찰의 차례는 합동으로 지낸다. 신청자 모두의 위패를 세우고 제삿상은 한 상으로 차려진다. 차례 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람들은 집에서 지낼 때 처럼 가족단위로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각자의 목적지로 떠난다. 타 사찰에 근무할 때 20명의 대가족이 설 명절에 찾아와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큰 방에 둘러 앉아 세 배까지 받고 떠나는 모습을 본적도 있다.


근래에는 많아지는 차례 신청자와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방문자가 줄어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종종 어른들께서 이제부터 절에 맡기려고 한다며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나까지가 끝이야. 내 다음 세대는 안 할 거야.’라고 그분들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자연스럽게 ‘네,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4~50대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60~70대 이후는 이동이 불편해서 오지 못한다. 40대 아래로는 접수자를 보기 힘들다.


사찰의 차례음식엔 고기, 생선이 올라가지 않는다. 전은 야채나 버섯종류고 탕국도 야채탕국이다. 주방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나지만 계란물 입혀 노릇하게 구워낸 고기전이나 생선구이는 없다. 여전히 나는 비 오는 날 부침이 생각나는 것처럼 명절이면 계란에 풍덩 담궜다 꺼내 구운 동태전, 참기름으로 볶아 낸 고소한 고사리나물, 시원한 소고기뭇국의 향이 생각난다. 이 음식들은 평소보다 명절에 먹어야 그 맛이 배가 되는 것이다. 절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므로 꾹 참아낸 후 연휴 근무를 끝내고 제일 먼저 엄마 집으로 가는 것은 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신청은 했으나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몇 해 전부터 간단한 동영상과 몇 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시지 않아도 잘 지내드렸다.’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고 나면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정말 고맙다. ‘저희 위패만 찍어 보내주세요.’, ‘과일에 뭐는 안 올리나요.’, ‘저희 아빠는 무슨 떡을 좋아했는데 다음엔 그 떡을 올려주세요.’ 등 부탁이 아닌 요구사항이 되돌아오면 난감해진다. 가끔은 내가 한 배려가 황당함으로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럴거면 집에서 지내지 뭐하러 맡기나.’ 하는 생각에 어처구니 없어도 각각의 문자에 답변을 보내고 통화를 모두 끝냄으로써 내 업무를 마친다. 


처음 명절차례는 조상의 섬김으로 시작된 의식이었을 텐데 ‘지내자니 번거롭고 안 지내자니 찝찝한’ 상태로 문화는 사라지고 종교적인 의미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력에서 명절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종교의 개념도 희미해지는 요즘이다. 몇 년 후 사라진다는 직업들처럼 차례 문화도 완전히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조상님 덕’이라고 믿던 어른의 시대가 떠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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