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을 베트남에서 열었다. 새롭게 생산하는 가방의 검수를 위한 출장이 목적이었다. 시베리아 기단의 매서움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향하는 인파속에서 표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표를 찾다보니 결국은 12일이나 되는 긴 시간을 베트남에서 보내게 되었다.
생산은 워낙 순조로웠다.출장이랍시고 공장을 찾은 것은 3일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문제가 없으니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고, 하노이의 면면을 느긋하게 톺아볼 시간까지 벌었으니금상첨화다.눈이 즐겁고입이 즐거웠다. 지난 하노이에서 먹고 마신 것들이다.
베트남 음식을 워낙에 좋아한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다양하게 즐긴다. 베트남에서 먹는 맛과는 당연히 다르지만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랠 수준은 된다. 그런데 참 이상하리만치 분짜만큼은 아쉬움의 간극이 크다. 그래서일까, 나는 베트남 땅을 밟을 때마다 틈만 나면 분짜를 찾는다.
분짜는베트남 어디에서 먹어도 맛있다. 굳이 더 맛있는 곳을 찾는 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맛있는 곳이 있다. 미묘한 한끗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하노이 롯데호텔에서 멀지 않은 '분짜 호아'에서는 그 한끗의 정점을 달리는 분짜를 즐길 수 있다.
호안끼엠 북서쪽의 '분짜 닥킴'이나 호안끼엠 남쪽의 '오바마 분짜'가 유명하다. 그곳의 분짜들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이곳은 훌륭하다. 일단 가격부터가 훌륭한데분짜 닥킴과 비교하면 무려 2천원이나 저렴하다.
어느 현지 식당을 가나 그렇겠지만위생에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지금까지 여기 분짜를 먹고 탈이 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껄끄럽게 느낀다면 억지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분짜가 내어지는 과정은 일사불란의 정수를 보여준다. 어찌나 업무분장이 잘 되어있는지 주문부터 분짜가 식탁 위에 올려지기까지는 노래 한 곡의 시간도 필요치 않다.
잘 구워진 돼지고기는 어딜가나 맛있다. 그래서 체감이 쉽지 않다. 하지만 국물은 천양지차다. 이곳의 분짜 국물은 텁텁한 느낌이나 걸리는 것 없이 깔끔하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국물의 주된 재료가 되는 느억맘이라는 장이 가진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잡내 역시 지금까지 먹어본 분짜 중에는 이곳이 가장 덜하다.
개인적으로는 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는 경우가 다르다.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이 식당을 찾을 때 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이곳의 음식은 참 깔끔하다.
푸짐한 한 상의 방점은 채소 무더기가 찍는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깐 모조리 먹어 치워야 한다.
문답무용, 맛있는 음식은 입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그 소임을 다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잘 먹겠습니다.
비록 점심시간이지만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잘 먹었습니다. 곧 다시 만나겠습니다.
롯데호텔에서 별로 멀지 않은 덕분에 찾아가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맛과 가격 역시 무척 훌륭하다. 혹시나 근처를 지나게 될 일이 생긴다면 한 번 쯤은 들러볼 수 있도록 하자.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시간 : 06:00 ~ 20:30 (중간에 재료 준비 시간 있음, 오후 영업 17:00부터 시작)
나는 쌀국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국수의 식감 때문인지 한 끼를 제대로 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은 쌀국수 집이 몇 군데 있다.
의도치 않게 찾게 되었다. 구글 지도를 켜서 저녁거리를 찾아 보던 중이었다.별 생각없이 눌러 본 곳에 잔뜩 남겨진 '백종원 쌀국수'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큼지막한 고기들이 잔뜩 걸린 주방에서는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아주 단순명쾌하다. 쌀국수에 들어가는 고기가 익은 정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뿐, 메뉴는 소고기 쌀국수 한가지 뿐이다.
처음에 베트남에 와서 가장 당황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저 작은 그릇에 담긴 고추이다. 어느 식당을 가나 워낙 푸짐하게 쌓아놓는지라 별로 맵지 않은 줄 알았다. 포 10이라는 곳에서 쌀국수를 먹었을 때의 일인데, 반 숟가락 정도의 고추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쌀국수 한 그릇을 다시 시키고 말았다.
이후로 저 고추는 절대로 건들지 않는다. 조금맑아보이는 국물 때문에맛이 제대로 우러났을까 의심도 생기고, 고추 생각이 자꾸 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진하고 구수한 국물이 매력인 쌀국수다.
끝없이 빗줄기가 흩뿌리는 음험한 하노이의 날씨 덕분에 감기기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설렁탕의 구수함을 닮은 쌀국수 국물 덕분에 거뜬히 쫓아낼 수 있었다.
한 입씩 홀짝이다보니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웬만해서는 국물을 다 먹지 않지만 싸그리비워버렸다. 그만큼 정신없이 맛있는 국물이다. 정말훌륭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가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인지 알게 해준다. 명성에는 다 이유가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베트남은 호수의 나라이다.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즐비하다. 하노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노이를 찾을 일이 생긴다면 롯데호텔에 묵어 보자.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 정도의 숙소에 묵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무수한 호수의 향연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서호는 그런 하노이에서도 규모 면으로나아름다움 면에서나 으뜸이다. 바다를 닮은 듯 광활한 이곳을 걷고 있노라면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된 비밀 공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제는 한국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귀한 것은 아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와서 찾지 않으면 섭섭한 곳 중 하나가 콩카페다. 워낙에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이 카페만이 가진특별한 분위기를 오롯이 즐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서호의 동쪽에 있는 콩카페라면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과연 입구가 맞는 것인지 의문을 만드는 작은 철문을 열면, 낡은 티를 숨길 수는 없지만 아기자기하게 정돈된 공간이 나를 반긴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다정함이 있기에정겹다.
'박씨우'라고 불리는 연유커피와 더불어 이 코코넛 커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코넛 커히는 콩카페의 자랑이자 상징이다. 수십 군데의 콩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셔 봤다.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곳은 여기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코코넛 얼음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향긋한 원두 내음의 조화가 여기보다 훌륭한 곳은 없었다.
코코넛 커피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블랙 커피를 한 잔 시켜본다. 아메리카노를 생각했건만 내어준 결과물은 에스프레소,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질만큼 강한 쓴맛이 혀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조용히 낮은 빛을 발산하는 백열전구는 오래된 나무의 향 아래의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베트남 커피는 굉장히 저돌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는데 이곳 역시 그 고정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둔탁함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레전드 커피'를 찾아 보자.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곳에서는 훨씬 은은하고 온순한 커피를 만날 수 있다.
정신없는 하노이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서호를 찾아 보자. 그리고 이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한 번 들러보자.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곳은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맛있는 커피와정겨운 분위기와 조용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7. 서호 심플 커피
주소 : Số 87 ngõ 50, 59 Đặng Thai Mai, Quảng An, Tây Hồ, Hà Nội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발견에서 오는 기쁨이 단연 첫번째이지 않을까 싶다. 기대하지 않은 중에 찾아오는 덕분에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기쁨이며, 그 잔상과 여운도 훨씬 길게 남는다. 서호의 또 다른 발견, 단언컨데 이번 하노이 여행에서 느낀 가장 큰 기쁨은 심플 커피에 있었다.
딱히 말이 필요없을 듯하다. 나는 이 공간의 정체성을 이 사진 한장으로 전부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기교 없이 산세리프 서체로 쓴 간판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움은 사진 속 공간에서특별한 꾸밈 없이 완성된다. 서호의 동쪽 가운데, 안으로 음푹 들어간 끝에 위치하여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부디 이곳이 나만을 위한 조용한 공간으로 계속 남아주었으면 하는 불손한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비단 내세울 것이 공간 뿐이었다면 이토록 크게 감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마셔본 콜드브루 중에 가장 맛있는 콜드브루가 있다. 계피향이 소담하게 올라오는 커피의 첫 모금을 넘겼을 때 나의 표정은, 아마도 사파에서 아침을 맞이했던 날의 웃음 만큼이나 기분좋은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만들면서 참 많은 노력과 배려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빨대 역시 그 중 하나다.이곳의 종이 빨대에서는 특유의 기분나쁜 향이 전혀 나지 않는다. 즐거움의 맥을 끊는 장애물이 없는 덕분에 온전히 커피의 맛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만의 공간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은 널리 알려야 한다.
틈날 때마다 무수히 많은 커피를 마셔보았고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였지만, 10일 남짓했던 하노이에서 만난 모든 카페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어떤 말로 표현해도 찬사의 마음을 담기에는 모자랄 것 같다. 직접 경험하는 것 말고는 대리만족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곳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곳일테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남는 공간이길 바란다.
무얼 먹어도 맛있는 이곳은 하노이다. 하노이의 음식에 대한 믿음은 앞으로도 굳건할 예정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고 싶다면하노이를 찾자. 이곳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노이의 음식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고, 제가 만든 이 가방 역시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