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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28. 2019

베트남 사파, 깟깟마을을 걷다

하노이, '19.01.06(일) ~ '19.01.17(목)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묻어 두고 있었지만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서른 먹은 생일의 아침을 사파에서 뜨는 해와 맞이한 여운은 바로 어제 일처럼 선연하다.



해발고도 1,800미터에 달하는 고원지대 사파. 이곳에서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무의미하다. 나의 시선 닿는 모든 것이 작품이나 다름없다.



사파에는 몽족이라는 소수민족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깟깟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비록 자본주의의 세파가 어리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우수에 찬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반긴다. 길을 걷던 여행자 모두가 일시에 걸음을 멈다. 수많은 렌즈가 본인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않고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자연과 공존을 택한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약간 상투적인 문장이 이들을 수식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과연 그러하다. 이곳의 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 문장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는 입장료가 있다. 7만 동, 한국 돈으로는 3,500원 남짓이니 그리 비싸지는 않다. 상업적인 모습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모든 게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그들의 삶에 잠시 머무르다 가는 이방인이 치르는 거마비 정도로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다.



마을은 계곡의 능선을 따라 아래로 향하면서 이어진다. 이곳에는 몽족의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이 무척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즐겁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깟깟마을과 함께하는 이들의 표정은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동네에서 자란 나무로 엮은 그네 너머로 마을의 전경이 나직히 펼쳐진다.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인부들이 분주하고,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이따금 울려 퍼진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괜스레 신기했던 건 편견일까. 커다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 말씀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채롭다는 생각을 다.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집을 짓고 개간을 한다. 과연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슬며시 일기도 한다. 하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쌀알이 영글기만을 기다리며 기를 머금었을 계단식 논에는 얼마 되지 않은 추수의 흔적이 역력하다.



우거진 산세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이곳에서 모여 계곡을 만들고 낮은 곳으로 향한다. 스치는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는 소리가 고요하다. 걷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고, 행복이 된다.



고민할 것이 없으니 재촉할 이유도 없다. 그저 평화롭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부산을 떨었더니 제대로 한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나무 그네에 걸터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여유가 아무런 불안 없이 온전한 쉼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만한 복도 없을 테다. 나는 지금 복이 많은 사람이다.



후들거리던 두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못다 한 걸음을 계속 걸어본다.



본디의 목적을 이뤄내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지만 이곳의 물레방아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이 소복히 내려앉은 이 녀석들은 쉬지 않고 흐르는 물길을 따라 느리지만 꾸준하게 바퀴를 굴려낸다.



조금은 만들어진 것 같은 분위기가 이곳을 감싸고 있지만 아무렴 상관 없다. 어차피 매일 우리 곁에 함께하는 것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폭포를 발견했다는 것은 마을의 끝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 앞에서 잠시 흐르는 땀을 식혀본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끝낸 지 오래이고, 지금은 씻고 싶은 생각이 조금 간절하다.



그렇다고 이곳에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심스레 난간 앞에 서서 몸을 담그는 상상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이 다리만 건너면 이제 깟깟마을과도 작별을 할 시간이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른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요동치는 뱃속에 기별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이삭이 영글어 고개를 떨구는 가을의 아침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새끼돼지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갓 세상에 빛을 본 존재 중 귀엽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녀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엽다.



이 녀석들은 귀엽다. 정말 귀엽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계단을 오르는 게 영 녹록지 않다. 거기에 아쉬움까지 더하니 오늘따라 유난히 다리가 무겁다.



다시 만나요! 그 약속, 올해 안으로 꼭 지키고 싶습니다.



너도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렴!





사파의 깟깟마을이 예쁜 것처럼, 하이퐁에서 이 가방 역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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