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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Feb 12. 2019

하노이, 서호를 걷다


하노이, '19.01.06(일) ~ '19.01.17(목)



나는 춘천을 이르는 '호반의 도시'라는 말을 꽤 좋아한다. 도시를 반으로 가르며 흐르는 공지천이 종국에 머무르는, 북한강에 보태지는 한 줄기 흐름의 종착인 의암호 생각하게 만드는 그 단어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하노이에도 비슷한 별명이 있다. 이름하야 '호수의 도시'. 허나 거의 다를 게 없는 어를 두고 떠오르 감상은 조금 다르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하노이를 직접 걸어 보자. 조금의 곁눈질만으로도 사방에 즐비한 호수들이 대답을 대신해 줄 것이다.



호안끼엠은 네 주민들과 여행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호수다. 유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하노이를 유람하는 여행자가 호안끼엠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하노이에는 호안끼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둘레만 17km에 달하는,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 역시 다채롭게 발산하는 개성 매력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짧은 거리는 결코 아니지만 못 걸을 만큼도 아니다. 시간은 차고 넘쳤 재촉하는 무언가도 없었으니, 곳곳을 누비며 숨바꼭질하듯이 나만의 보물을 건져 올리기에는 충분다. 다음 여정에도 잊지 않고 발걸음 할 것이다. 거대하게 숨겨진 원석, 하노이의 서호를 지금부터 함께 걸어 보자.



바래고 해진 겉모습이 괜한 호기심을 부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서호의 동쪽에서 호수를 마주하고 자리한 이곳이 좋아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 않았다. 한 층을 올라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에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망중한도 이런 망중한이 없다. 내 정신 하나 온전히 간수하기 힘든 하노이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고요와 여유가 조금은 낯설다. 그래서일까,  시간은 괜스레 특별하고 조금 더 소중하다.


비단 그것만이 이곳을 좋아게 만드는 이유의 전부였다면 이토록 그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 코코넛 커피는 하노이의 여러 콩카페에서 마셔본 중 가장 훌륭했다. 사랑스러운 공간이 있고 맛있는 커피가 함께한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간의 여유를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딛는다. 도무지 호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하지만 편안하다. 오늘은 그 어떤 사소한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하루를 만들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아무 생각 않고 다음 딛는 걸음에만 정신을 쏟는다.



하노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뒤 얼마 동안이었을까. 나는 이곳의 이름을 얼마나 입에 올렸는지 모르겠다. 칭찬할 거리는 이미 마르고 닳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미슐랭 가이드를 만들어 하노이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카페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나 나는 이 한적하고 특별할 것 없는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글로 지난 아쉬움을 털어낼 시간에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는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부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기억 속 따스함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가득 실어 보내며 문장의 끝을 맺어볼까 한.



왠지 산토리니를 옮겨놓은 것 같은 이곳은 실제로 그리스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앉은자리에서 이 넓은 호수의 면면을 한눈에 담아낼 수 있으니 여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으나 마음에 담아둔 곳이 이미 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였다.



고양이가 어물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자연스러운 발걸음에 이끌렸다. 공룡이 떡하니 수문장처럼 자리하는 이곳을 어떻게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공룡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다. 집이 곧 학교요 학교가 곧 집인 생활을 2년 동안 는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도 나름의 취미와 소일거리를 만들고 즐기고는 다. 그중에서도 꽤나 심혈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았던 취미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곤충 채집을 꼽을 것이다. 얼마나 그것이 좋았으면 동기와 합심해 곤충 채집 동아리를 만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자연사박물관을 좋아하고, 종종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 주는 이 공간이 나는 가끔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자연사박물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늠름한 자태의 풍뎅이는 야생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등장해 나를 살짝 놀라게 만든, 반달을 가진 곰도 함께 말이다.



한 바퀴를 돌아보고자 시작한 여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하노이에도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퇴근을 재촉하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런 인파 속을 헤치고 종착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다.



기세가 등등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지만 한기를 싣고 있지는 않았기에 기분 좋게 받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밤거리를 걷고 있으니 서호를 걷고자 마음먹은 게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연히 내린 어둠을 배경 삼아 걷는 서호 역시 나름의 매력이 있다.



마침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아시안컵 첫 번째 예선이 열리는 날이었다. 굳이 중계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호와 탄식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이곳의 밤거리는 차분한 듯했지만, 공기 만큼은 그들의 눈빛 너머로 전해지는 기대와 흥분으로 후끈하였다.



그런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으니, 급하게 호안끼엠으로 발걸음을 옮겨 맥주 한 잔으로 저녁을 마무리하였다.


비록 20km 남짓한, 그리 길지는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 와중에 하노이의 참으로 다양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서호가 있음으로 하여 더욱 좋아진 하노이, 나는 다음 여정에도 잊지 않고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서호의 매력이 색다름에 있다면, 이 가방 역시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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