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동네의 이름이 인천공항 전광판에 오르내리는 풍경은 더 이상 생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동네로 떠나는 걸 즐긴다. 개척 초기 단계에 있는 여행지에는 장점이 많다.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표값도 대체로 저렴하다. 떠나는 게 일상인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이게 다 미지의 손님을 향한 새로운 시도를 주저 않는 저가항공사들의 노고 덕분이니,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세토내해의 서쪽 끝, 야마구치현이라는 영 낯선 곳에 자리한 우베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알려진 동네 중 하나다. 인구는 15만을 조금 넘고 도시의 대부분이 공업지대이며, 유명한 것이라고는 일본에서 제일의 수출량을 자랑하는 시멘트가 전부인 야마구치현 우베다. 도무지 우리가 관심 가질 이유가 없는 곳이지만 에어서울에서는 희한하게도 정기편을 띄우고 있다. 심지어 취항한 지 일 년 반이 넘었으니, 사실 새롭게 발굴했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이내 우베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뚱아리를 실었다.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골 동네에 말이다. 그런 우베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P.S. 한 가지 슬픈 사실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베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2019년 3월 31일부로 유일했던 에어서울의 우베 노선이 단항 했다. 복항 예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조금 먼 곳이 되어버렸다.
1. 一代目 豊
주소 : 1 Chome-1-4 Chūōchō, 中央町 Ube-shi, Yamaguchi-ken 755-0045
시간 : 11:00 ~ 14:00 / 17:30 ~ 자정 (금, 토 새벽 2시까지 연장 영업)
호텔 직원분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식당이 두 곳 있었다. 여기가 그중 하나였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예약 없이는 상 하나 받기조차 어려운 그들의 사정 탓이었다.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는 이방인이 되려했던 나는 졸지에 길거리를 헤매는 방랑자가 되었다.
YUTAKA라는 뜻 모를 단어가 워낙에 눈에 잘 띈 탓이다. 급하게 돌린 발걸음이 이곳에서 멈춘 것은 말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선택지는 없는 듯하고 파고드는 한기는 기세를 더한다.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갈 만한 곳도 없으니 정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약간의 고민이 이어졌지만 조심스레 가게 문을 열어젖힌다.
선택지가 마땅치 않아서 맺어진 인연이지만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즐긴 시간은 충분히 즐거웠다. 뜻하지 않은 친절까지 더해진 이곳에서의 한 끼는 우베라는 동네에 고이 모셔둘 만한 추억의 한 조각이 되기에 충분했다.
야마구치현은 일본에서도 복어의 어획량이 가장 많은 동네라고 한다. 덕분에 복어를 재료로 한 요리를 취급하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것 역시 복어고 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주된 용건 역시 복어인 듯하다.
다른 언어로 제공되는 메뉴판이 없는 탓에 무언가를 고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구운 닭고기와 복어 덮밥을 겨우 시킬 수 있었고언제나처럼 하이볼 한 잔이 함께했다.
밑반찬으로 내어주는 이것도 돈을 받는 것이라 들었지만 거절의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술 한 잔만 놓고 홀짝거리기에는 주린 배가 짊어지는 고생이 과하지 않은가. 식감은 물론이거니와 과하지 않은 간이 매력적인 새우는 하이볼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잘 구워진 고기는 무조건 맛있다. 닭은 원래 맛있다.잘 구워진 닭고기가 훌륭하지 않을 리 없다. 자신 있게 사진을 내건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틀리지 않은 추측이었다. 밥 한 공기를 더하면 완벽하겠다 생각했다. 때마침 덮밥 한 그릇을 접시에 받친 직원 분이 나에게 가까워 온다.
복어 덮밥일 것이라 생각하고 주문했지만 정확한 정체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해산물 덮밥을 뜻하는 '카이센동'을 시켰는데 그 해산물에 복어까지 포함되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맛있었고 소담하게 얹은 꽃 한 송이 덕분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난다.
싹 비워냈다. 몇 숟가락 들지도 않았는데 바닥이 드러났다. 큰 기대가 없었던 한 그릇이지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별 자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숟가락을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맛있었다. 무척.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분 역시 혼자만의 저녁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으신 듯하였다. 그분이 갑작스레 나에게 내민 손길은 한 접시의 생선 요리와 함께였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양념이 스며든 이 생선이 맛있었던 것에 더해 예기치 못한 친절까지 함께한 덕분에 우베에서의 첫날은 유난히 푸근하였다.
피치 못해 찾게 되었지만 받은 것은 나의 기대를 한참 넘어섰다. 시린 어느 겨울의 우베에 따뜻한 기억을 한 소끔 놓게 해 준 이곳이 나는 아직도 감사하다. 잘 먹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만나요.
2. 中華ダイニング食彩 三国志
주소 : 2 Chome-2-8 Takezakichō, Shimonoseki-shi, Yamaguchi-ken 750-0025
우리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일본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생소한 도시인 우베다. 하지만 이곳은 혼슈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시코쿠와 큐슈를 지근거리에 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한 시간만 열차에 몸을 실으면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로 건너가는 것은 일도 아니니 이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시모노세키를 위해 할애한 둘째 날의 오후, 그 방점을 삼국지라는 이름의 중화요리집에서 찍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역 근처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인들이 이룬 거리가 있다. 일본어가 무척이나 유창한, 중국 출신의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그 한인거리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구글지도에 평을 남긴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한인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중국 본토의 맛', '시모노세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중국' 정도로 귀결될 수 있으니, 가히 호기심 때문이라도 발걸음이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소주 한 잔으로 시작한 이곳에서 경험한 것은 생선이 재료가 된 깐풍기 비스무리한 무언가와 달콤한 소가 들어간 호빵 한 접시. 기다림의 시간이 적지는 않았으나 넓게 트인 주방 너머로 바삐 움직이는 부부의 부산스러움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밥 한 공기가 필요한 음식들을 유독 많이 만난 듯하다. 이 음식을 두고는 길게 주절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자체만으로는 훌륭한 생선 깐풍기, 만일 밥 위에 붓는다면 밥도둑, 이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할 듯하고 '밥해적선장' 정도가 될 것이다.
일본의 한인거리에서 중국인이 요리하고 내어준 깐풍기라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조합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맛있으면 장땡이다. 삼팔까지는 아니라도 일팔광땡 수준은 되는 맛있는 깐풍기이다.
직접 만든 것 같지도 않고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인다. 후회했다. 괜한 호기심이 화를 불렀구나 싶었다. 입에 가져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맛있는 호빵은 교토의 가와라마치 어느 시장통에서 좌판처럼 팔고 있던 고기호빵이다. 감히 동일선상에 올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녀석은 너무나 맛있었다. 우유의 향이 그윽하게 퍼지는 첫 만남이 달달한 소에 닿을 때까지 이어진다. 몇 번의 저작활동 끝에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맛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별 것 없는데 별 것 있는 맛이다. 지금도 또 다시 먹고 싶을 만큼 말이다.
너무나 맛있는 한 끼가 함께했던 덕분에 시모노세키의 저녁이 즐겁게 저물었다. 나는 조만간 시모노세키를 또 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식당이 있음으로 하여.
3. 大島珈琲店
주소 : 2 Chome-7-1 Shintenchō, Ube-shi, Yamaguchi-ken 755-0029
이곳을 위해서 얹게 될 말은 많지 않다. 딱히 흠 잡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단점이 없다. 그나마 찾아낸 것이라고는 문을 닫는 시간이 지나치게 이르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지난해와 올해, 스무 번 남짓의 여행에서 찾게 된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면 단언컨대 분위기와 향이 훌륭한 카페를 찾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곳은 하노이의 서호에서 발견한 심플 커피와 함께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훌륭한 카페 중 하나이다. 우베를 다시 찾고 싶은 이유를 하나만 꼽아보라고 하면 이곳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베 사람들과 30년 남짓의 세월을 함께했다는 이곳은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다. 약간은 색이 바랜 손잡이의 끄트머리에도 그 자취는 내려앉았다.
낮게 흐르는 하프시코드 선율과 원두 볶는 향이 가득한 이 공간은 아주 세련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품이 있고 간결하게 꾸며진,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무엇보다 차분히 가라앉은 이곳의 공기가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공간이 집 앞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직접 로스팅하고 블렌딩하는 이곳의 특제 커피는 단돈 430엔이다. 커피 맛을 세심하게 구분할만큼 즐기는 것이 아니기에 훌륭함의 정도를 논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그래도 조심스레 생각을 덧붙여 보면, 첫 한 모금 뒤에 이곳에 있는 모든 커피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르게 되었다.
무척 다양한 원두를 갖추고 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커피의 종류도 상당히 많다. 비싸게는 한 잔에 2만 원 가까운 것도 있으니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다양하게 즐겨보고 싶다. 그런데 하필 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수중에 현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한 잔을 겪어 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시 한 번, 아니 몇 번 더 찾게 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우베는 이곳이 있음으로 해서 다시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워낙에 조그마한 시골 동네인지라 걱정이 적지 않았지만, 푸근한 인심과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한 덕분에 따뜻한 마음을 품고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만납시다 우베, 곧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