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의 초입에,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팔자에도 없을 것 같았던 가방을 만들기 위해 상경했다. 마침 동생은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3평 남짓한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도 고시원도 아닌곳을 보금자리 삼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와 동생은 모니터 화면에 뜬 합격이라는 글자 하나에 절절해보기도 하였고, 내가 만든 가방을 누군가 메어 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행복하기도 했다.
참 작은 방이지만 동생의 수험서와 합격증서를 꽂아둔 책장이 있었고, 냉장고 옆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는 내가 만든 가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텅 빈 방을 보고 있자니 지난 시간의 잔상이 자꾸 겹친다.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나에게 보금자리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필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내 한 몸 뉘일 곳이었고, 지나온 시간의 민낯을 묻어두는 곳이었다.
아마 살면서 거쳐온 수많은 보금자리 중가장 자그마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이곳을 그 어디보다 켜켜이 쌓은 시간의 무게가 큰 곳으로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