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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27. 2016

가방을 만들다. 열하나

예쁜 가방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글의 시작이 어렵다. 두번째 샘플을 의뢰하기 전까지 아주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은 훌륭하게 작동한 자기방어기재에 의하여 깨끗하게 지워진 듯 하다. 기를 쓰고 끄집어내 보려 했지만 '인바디'라는 체성분 분석 기기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어떤 원단을 찾는 일로 도움을 청하여 동대문을 헤집고 다니며 소소한 용돈 벌이를 했던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공장에 발을 디딘 순간의 감상 역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잘 만들어주십사 한 손에 들려있던 비타민 음료 한박스와 함께 예시로 보여드리고자 핸드폰에 저장해간 가방 사진 몇 장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두번째 샘플을 만드는 동안 나는 상당히 필사적이었다. 안된다고 하는 것은 왜 안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끊임없이 사장님을 귀찮게 하였다. 너무나 부탁이 많았던 탓에 가끔 짜증을 내기는 하였지만, 50만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액수로 씌운 덤터기가 민망했던 것인지 사장님은 대부분의 요청을 별 말 않고 가방에 담아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미덥지 않았던 것은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일이지만 굳이 입아프게 얘기를 해야겠다. 갈때마다 멀쩡하기만 하던 공장 앞의 하수도가 왜 갑자기 시에서 공사를 한답시고 파헤쳐진 것이며, 그로 인해 공장이 문을 닫은 것도 아니었는데 예정된 날짜보다 일주일이 넘게 샘플 수령이 지연되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주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던 처음의 이야기와 달리 나의 기다림은 3주를 훌쩍 넘어갔고 5월의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가방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가자 마자 제대로 가방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빨리 생산을 시작하자며 계약금부터 입금하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욕지거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 했지만 애써 웃음으로 무마하며 공장을 빠져나왔다. 잔뜩 오른 흥분을 가라앉히고 근처의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기능적으로는 딱히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나의 그 없는 것과 다름 없는 미적 감각으로 인하여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든 생김새를 갖게 되어버린 두번째 가방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자니 서글픈 마음에 저절로 눈앞이 흐려지는 듯 했다.



동생은 흡사 변발을 한 것 같다고 평하였다.
새로 만든 크로스백은 일수가방으로 쓰면 딱일듯 하다.


못생긴 정도가 좀 심하다. 예쁜 것과 못생긴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나조차도 이 가방은 좀 심하게 못생겨보였다. 첫번째 가방과 달리 나의 주문이 전부 반영된 가방이기에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넋나간 사람처럼 하루종일 '예쁜 가방, 예쁜 가방...'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는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방이 예뻐지기 위해서 뭘 만져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전에, 대체 이 가방은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못생겼을까를 알아내는게 급선무인 듯 했다.



이 가방을 본 주변 사람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본듯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마침 그 날은 군대에 있을 때 나의 맞후임이었던 형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건축학도이며 미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 내 가방의 문제를 파악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든든한 형이었기에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사당역 근처의 어느 빈대떡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갈기갈기 찢어서 불태워버리기 전에 눈앞에서 가방 좀 치워달라는 형의 부탁만으로도 이미 이야기는 끝난 듯 하였다. 괜시리 멋쩍어진 테이블 위에는 막걸리 병만 수북히 쌓여갔다.

술자리는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고 장소만 바뀐 채로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다. 어떤 것 같으냐고 물어볼 때마다 한결같은 반응이 돌아오는, 그 꾸준하게 못생긴 가방 주변으로 늘어진 수많은 고민들을 나는 부지런히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에 고이 담아 깨끗이 씻어내렸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 가장 많은 술을 마신 날. 아마 맨정신으로는 그 답답한 마음을 떨쳐낼 길이 마땅치 않았으랴.

어김없이 아침은 밝았다. 이쯤에서 포기할까 생각도 하였지만, 여정은 계속된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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