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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Aug 01. 2016

가방을 만들다. 열셋

새옹지마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된 가방의 디자인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빨리 샘플 의뢰를 하여 실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큰데, 신병 위로 휴가를 나와서 복귀 날짜를 센 것처럼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 성남 땅에 발을 딛는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샘플 만들어주실 분을 또 다시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사실 요즘 같이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정보 접근 비용이 0에 가까이 수렴하는 시대에 샘플을 만드는 업체를 찾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진짜 문제는 나의 가방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이해를 하시고 꼼꼼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인가에 대한 불확실성과 일종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이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인데, 이는 직접 발품을 팔고, 많은 분들을 만나뵙고 가방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다. 철저히 아날로그적인데, 다행스럽게도 시대에 조금은 뒤쳐저서 가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차라리 편하게 느껴지면서, 잘 맞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을 하던 중에 샘플을 만드시는 분을 소개 받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첫번째 샘플에 신랄한 평을 아끼지 않으신 사장님이 계셨던 신설동의 부자재 매장에서, 사장님의 심사평을 듣던 바로 그 순간을 함께한 어느 가죽 잡화 공장 사장님께서 소개해주신 분이었다. 갈길을 잃고 표류하던 순간의 기억에서 동앗줄을 끄집어내게 될 줄이야, 사람 일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야 새로이 찾아뵌 사장님은 청량리 근처인 중랑구 상봉동에 계셨다. 어째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하였지만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은 물론 아니었다. 반가운 인사로 맞아주신 사장님과 나눈 장시간의 이야기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믿어도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벽면에 걸려 있는 수많은 샘플들이 말해주는 내공과 연륜은 실력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생길 틈조차 주지 않았다. (캐논의 '헤링본' 카메라 가방을 만드신 분이다.)

과연 나의 마지막 샘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 2주의 시간은 가방을 만들면서 경험한 그 어떤 기다림의 순간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내가 원하던 가방을 손에 쥐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고는 했다. 고생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 너무 신나서 온 동네를 강아지마냥 뛰어다니지는 않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고는 했는데, 그날 내가 보인 반응은 예상의 범주에 있었던 모습은 아니었던 듯 하다.

'이제 나왔네'

지하철역 의자에 앉아 사장님께 받아든 가방을 올려놓고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가방을 만들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고군분투한 기억들이, 총 세 번의 가방을 만들며 마음 졸였던 시간이 머릿 속을 시냇물처럼 흐르기는 했지만 그 마음은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깊게 몰아 삼킨 한숨을 한 번 내뱉어 본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싶어 후련하고, 상쾌하다.

마침내 팔아도 될 것 같은 가방을 만들어냈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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