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Jul 11. 2016

가방을 만들다. 둘

저 2월에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그 대화가 있은 후로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에 틈틈이 준비한 끝에, 제품 컨셉의 고도화 및 제품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지금은 샘플 생산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라는건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가지 시험을 준비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냥 용기만 얻었다. 분명 위와 같은 원대한 청사진을 그렸을 대뇌가 지시하는 명령을 나의 수족은 사력을 다해 거부하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남아있던 일말의 양심은 가끔씩 가방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어렴풋이나마 '이런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머릿속에 상상의 가방을 만들어내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위아래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며 가방 양 옆에는 자주 꺼내는 짐들을 쉽게 넣고 꺼낼 수 있게 서랍같은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말로는 그럴듯 한데, 사실 저게 어떻게 생긴 가방이 될지는 당시의 나도 잘 몰랐다. 그래도 한가지 기특한 것은 한번도 써본 적 없는 구글의 'SketchUp'이라는 툴을 새로 배우고, 그것을 사용하여 어떻게든 가방을 그려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가방의 생김새를 보고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것은 기분탓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이 파일을 다시 열어본 순간, '저때의 나는 정말 여행 가방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 한 적이 별로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었다. 하지만 저런 다양한 시도들이야 말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만나는 가장 전형적인 클리셰가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퇴사의 그날이 왔다.

'LG화학 테크센터 ABS소재개발팀'.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나를 품어준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인생 2막의 열차가 힘차게 경적을 울리며 출발을 알리던 곳. 그야말로 나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곳에서 '인화의 LG'라는 명성에 걸맞는 정말 좋은 분들과 함께한 2년은 결코 어디에서도 헛되이 보냈다하지 못할 귀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그런 감정의 올가미도 나의 퇴사를 막지는 못하였지만,


지금도 내 업무다이어리 제일 앞에는 그때의 명함과 사진이 꽂혀있다.


2016년 2월 19일 금요일. 고도가 낮게 깔린 태양은 지면을 데우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서릿발이 어린듯한 찬바람은 온 몸을 파고들어 절로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약간의 주홍기가 감도는 늦은 오후의 빛이 회사 옆 야트막한 언덕에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나와 간신히 나를 비추던 어느 겨울의 오후. 내 등 뒤로는, 다시는 나를 위해 열릴 일 없을 것 같은 본관 유리문의 삐걱대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아무렴 좋았다. 내 머릿속은 다음주 화요일 여자친구와 함께 오사카로 떠날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깐. 여행가서 무엇을 먹을까, 서울에 올라가면 어떻게 가방을 만들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과 함께한 기분 좋은 주말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아빠 지금 울산대병원 응급실로 엠뷸런스 타고 가는 중인데 중환자실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매거진의 이전글 가방을 만들다. 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