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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11. 2016

가방을 만들다. 셋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산소포화도와 맥박을 알리는 모니터의 삑, 삑 소리만이 한밤을 지나는 응급실의 적막함을 채울 뿐이었다. 급성 폐렴이 너무 심한 탓에 조금이라도 경과가 나빠지면 언제든 중환자실에 갈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목소리 너머로, 폐렴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질 경우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의사 친구의 목소리가 자꾸만 겹치는 듯 하여 마음이 섬짓하다. 응급실 현관 앞에서 처음 마주한 울산의 하늘은, 핏기라고는 싹 가셔버린 그렇게도 잿빛이었다.

"어, 인혁선배 아니세요?"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시선의 끝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고등학교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울산대병원에서 2년 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는 마지막 날, 그녀는 그 유종의 미를 응급실 당직으로 거두는 중이었다. 너무나 고마운 후배의 반가운 인사에 온몸을 갑갑하게 죄어오던 긴장도 조금은 풀어지는 듯 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사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는, 요즘 인기있는 한국민속촌의 장사꾼이 아씨부채를 판매하는 현장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 엄중한 시국에, 병원에 왔으니 의사선생님들께 팔만한 가방이 없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한 허장성세와도 같은 것이었을까,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고요함이 내려앉은 응급실 복도를, 그날 밤 우리는 새로운 가방을 고민하는 목소리로 가득 채웠다.


의사용 힙색. B2B 영역으로 확장되면 언젠간 만들지 않을까, 지금도 메모장에 저장되어있다.


천만 다행으로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올라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병실에 입원하여 퇴원을 기다리는 지루한 날들이 반복되었다. 퇴사 직후 비교적 불룩한 지갑과 남아도는 시간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아버지 옆을 계속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와중에 위안거리이자 감사할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대로 한 숨 잘 수 없는 북적거리는 병실에서 밤낮없는 긴장을 벗삼아 크게 차도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상태를 매일 지켜보는 나는 생각보다 빨리 지쳐갔다. 불안함이 자라는 만큼, 조바심과 답답함의 크기도 날로 커져만 갔다.

무척 혼란스러웠다.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느낀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몇 년 전의 일로 인해 장남으로서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깊게 가지게 된 것이, 나를 위해 큰 마음 먹고 내린 앞으로는 다시 없을 것 같은 이 결단을 가로막을까봐.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가방 만드는 것을 포기해버릴까봐. 그런 두려움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매일 이런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2주가 지난 뒤 건강히 퇴원하실 수 있었다. 살면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였던 3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지금도 가끔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와 매일 올려다 본 울산의 아침 하늘을 떠올리곤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매일 아침 그 파란 하늘에 나직하게 흩뿌려지던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일이 되었고, 시작도 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나 서럽게 고민하던 나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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