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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Sep 09. 2017

서울새활용플라자를 가다.

업사이클링의 현재와 미래



마커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 스위스 태생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그들은 비에 젖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메신저백이 없을까 고민했다. 곧, 길가에 버려진 온갖 방수천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의 시작이었다.


버려지는 방수천, 안전벨트, 자전거 튜브를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이들의 작업은 꽤 괴상하고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지만 프라이탁만의 독특한 매력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전 세계에 수많은 매장과 팬을 가지고 있는 패션 브랜드로서 해가 갈수록 그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포스트 프라이탁을 꿈꾸는 수많은 기업들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부지런히 뛰고 있다. 수명이 다한 자원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다시 생태계로 환원하여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재활용 이후의 재활용', 업사이클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5일, 서울시 성동구에 '서울새활용플라자'라는 이름의 업사이클링 문화공간이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 7층 규모의 건물은 연면적 5천 평으로 국내에서는 업사이클링 관련 시설 중 가장 그 규모가 크다.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한 공간답게 많은 시설들이 폐품을 이용하여 제작된 것이 흥미롭다. 전시장은 물론이고 업사이클링에 대해서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과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업사이클링 기업들을 위한 사무공간까지, 다양한 공간들이 알차게 들어차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버려진 제트엔진을 활용한 조형물이 자리해있다.



건물을 짓고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재료와 버려지는 재료를 조화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로비의 한쪽 벽면에는 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한 기업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입주해있는데 파이어마커스, 터치포굿과 같이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기업들의 이름도 보인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언젠가는 이곳에서도 프라이탁과 견줄 수 있을만한 대단한 기업들이 하나 둘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바라는 바이다.



학예사분의 가이드와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어있다.


업사이클링은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기물들이 본래의 성격과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는 점에서 재활용과는 조금 개념이 다르다. 폐품을 재료의 형태로 재생하고 다시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자원을 새롭게 소모하게 될뿐더러 환경오염 역시 야기할 수 있는데, 그 점에서 효용성을 따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


단순히 버려지는 자원을 재생하는 것 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고, 관련된 사업을 꿈꾼다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버려지는 것들을 수거하여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새 재료를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환경을 더 오염시키고 비용도 더 많이 발생한다면 업사이클링 본연의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1층에 있는 전시장에서는 '지구를 위한 약속'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에는 어떤 업사이클링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면 소재들을 이용해서 옷이나 다양한 악세서리를 만드는 'RE;CODE'이다.


버려지는 재고 의류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 RE;CODE, 흥미롭게도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에서 런칭하였다. 오랫동안 판매되지 않은 장기 재고는 일반적으로 소각하게 되는데 이렇게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고 환경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기업의 CSR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기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지만 '윤리적 소비'라는 것이 트랜드를 너머 하나의 소비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을 포착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RE;CODE



업사이클링 기업들이 가지는 공익성과 스토리는 크라우드 펀딩에 잘 부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브랜드들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폐자동차에서 수거되는 가죽 재료들을 이용해 가방과 여러 가지 잡화를 만드는 모어댄의 'Continew' 역시 그중 하나이다.


나는 이 브랜드를 와디즈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첫번째 펀딩이 끝나갈 즈음 펀딩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여튼, 그랬던 Continew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사진으로만 보던 가방과 지갑들은 실물로 보니 훨씬 고급스러웠고 디자인도 기대 이상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제품들을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Continew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BETTER RE'


버려지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보조배터리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으로 2015년에 킥스타터에서 70,000달러의 펀딩을 달성하였다. 다만 이 제품을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는 청소기와 같은 소형 전자제품의 배터리를 교체해주는 사업을 통해서 성장 모멘텀을 확대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관심 갖고 지켜보려고 한다.


BETTER RE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제품이었다.


전혀 새롭지 않다. 소재로 보나 제품 컨셉으로 보나 프라이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뻤기 때문이다.


수많은 업사이클링 브랜드들이 만들어내는 백팩 중에서 가장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녀석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한들 결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보이는 부분에 있다. 나 역시 기능이 강조된 가방을 만들고 있지만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이다. 보이기 위한 아이템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터치포굿'의 백팩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터치포굿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2층으로 올라왔다.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 업사이클링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층에는 꽤나 흥미로운 공간이 하나 있다.



새활용 소재 라이브러리


업사이클링에 사용되는 다양한 재료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발을 들이고 나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쓰고, 버리는 것들이 눈앞에 잔뜩 걸려있기 때문. 바꾸어 말하면 업사이클링에는 그 소재와 방법에 제약이 없다 할 수 있다.



이 공간의 마지막은 소방호스를 이용해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파이어 마커스'의 특별 전시가 장식하고 있다.


양천가방조합에서 함께 가방을 만들고 있기도 한 '파이어 마커스'이다. 업사이클링을 몸소 실천하는 브랜드일 뿐 아니라 소방관 분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대표의 아버지께서 소방관다.) 무엇보다 이규동 대표님의 업을 향한 열정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한 의지는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품인 화분이다. 소방수가 토출 되는 금속 재질의 토출구, 간단한 도색을 거쳐 화분으로 재탄생했다. 치열한 현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혹 판매를 한다면 몇 개 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제품이었다.


파이어마커스



한 층 더 올라가니 입주한 기업들의 사무공간이 나타난다.



꽤나 넓은 면적의 사무실을 기업마다 배정해주고 있다. 자재의 조달과 재생, 보관이 업사이클링 기업들에게는 큰 고민거리이다. 공산품만으로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기업들은 원부재료를 재고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지만 업사이클링 기업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폐품의 조달이 안정적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수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재료로 재생하는 과정을 자체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에게 공간에 지불하는 임대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사무공간은 물론 작업 공간, 보관 창고까지 묶음으로 임대해주는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지원 프로그램은 생존과 성장을 고민하는 국내의 업사이클링 기업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막 첫발을 디뎠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만, 그 성과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로 보이는 것에만 경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성과를 거두어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 많은 기업들의 열정과 어우러진다면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대중의 인지와 수요 확대는 물론, 더 많은 기업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요람이자 만남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업사이클링의 현재와 미래를 보고 싶다면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새활용플라자 (http://www.seoulup.or.kr/)


서울특별시 성동구 자동차시장길49 서울새활용플라자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도보 10분)

화~일 10:00 ~ 18:00

금,토  10:00 ~ 19:00

* 매주 월요일, 추석 당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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