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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Sep 06. 2018

여가 오사카를 다시 만들다.

도저히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았던, 너무나 길고 힘들었던 여름이 이별을 고하고 있는 듯 하다. 올려다 본 하늘을 눈에 담을 때면 초점이 맺는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아침 저녁으로 춥다는 혼잣말을 습관처럼 내뱉는걸 보니 마침내 가을이 오려나보다. 조용히 분주했던 나의 2018년은 불과 네 달 남짓 남았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기존 제품을 새로 생산할 때 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본능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함께하는 내 가방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불만족스럽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 의심 혹은 의문의 여지조차 없이.



여가 오사카는 개인적으로 무척 애정이 많은 가방이다. (그렇다고 다른 가방들에게 애정이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지만) 여가 홍콩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트래블러스 하이'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데 여가 오사카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무료함에 가득 찬,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는 과거의 삶으로 회귀했을 것임에 그것은 자명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여가 오사카는 그렇게나 고마운 놈이다.


그런 여가 오사카가 올해 3월부터 시작하여 근 3개월 가량 진행된 리뉴얼 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너무나 오랫동안 벼르던 앓던 이 같은 일이었는데, 해가 바뀌고 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만큼 이번 리뉴얼은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의욕적으로 임했다. 인고의 시간이 어찌 없었겠냐마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쁘게도 결과물은 기대한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의사결정이 무척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고 말을 하는 놈이 창업을 한 것 부터가 조금 모순인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 아닌 평은 차치하고라도) 그렇지만 이번 리뉴얼 작업에서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큰 변화 하나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


제조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고민스러운 것은 나와 마음이 맞으면서 실력이 좋은 공장을 찾는 일이다. 이 업의 초창기에 패기 하나만을 믿고 국내에서 공장을 찾으면서 이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 일인지 호되게 겪었다. 정말 운이 좋아서 마음이 맞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과 맺어온 관계가 결코 깊지 않다 할 수 없기에 그 동안은 쉽사리 공장을 옮기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은 가격이 문제인 것인데, 그것은 조금 더 좋은 가방을 만들고 싶었던 탓이다. 리뉴얼 전의 여가 오사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좋은 품질의 원단과 부자재를 사용하고픈 욕심과 더불어 '이건 꼭 필요한건데' 싶은 기능들의 존재가 리뉴얼을 부추기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내에서 나름의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도 '답이 없다'라는 결론 외에는 도달하는 지점이 딱히 없었던 것이 그간의 상황.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믿을 만한 공장을 찾는 일'. 해결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리뉴얼이었기에 가히 필사적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친구의 도움으로 좋은 벤더 업체를 찾을 수 있었고,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별로 극적이지 않아서 독자 입장에서는 김이 빠지는 전개이지만 사장으로서는 정말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는 결말이다.




리뉴얼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 공장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 기존 제품과 동일한 첫 번째 샘플을 요청하였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세세한 부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부족한 점들이 조금 보였다. 리뉴얼을 향한 길은 다시 미궁에 빠지는 듯 했지만 한국사람에게는 삼세판의 미덕이 있다. 요구사항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정리하여 양산 제품과 동일한 자재와 품질 수준으로 샘플 제작을 한 번 더 의뢰하였다. 그 요구사항은 A4용지로 정리해도 몇 장 분량이 될 만큼 꽤나 세세하고 까탈스러웠는데, 다행히 공장 사장님께서 안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계신 공장 분들과는 합을 맞춘지가 꽤 되었기에 새 제품을 기획하고, 샘플 제작은 물론 양산 체제를 갖추는데까지도 3주면 충분하다. 나름의 경험치도 쌓였으니 이번에도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었는데, 현실은 생각과 조금 달랐다. 벤더 담당자 분과의 첫 만남부터 만족스러운 샘플을 뽑아내는 데에만 한 달 남짓의 시간을 써버렸다. 공장이 베트남에 있는지라 물리적으로 워낙 거리가 있는데에다 중간에 한 다리가 더 생긴 셈이니 기존 작업 속도에 비해 느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러웠던 것은 새로 의뢰한 두번째 샘플이 첫번째 샘플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무척 만족스러웠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쓴 것을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의 점검을 더 거친 후 간단한 수정사항을 반영하여 곧바로 양산을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의 걱정거리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보강 작업을 많이 거쳐 전체적으로 가방이 많이 튼튼해졌고, 원단과 지퍼, 각종 플라스틱 부자재의 품질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물론 내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그렇다고 부족한 가방을 적당히 타협해서 만들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개척하고 스스로 발전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국내에서 생산을 할 때는 매일 공장에 찾아가서 진척사항을 확인하고, 수정 사항은 현장에서 바로 개선법을 찾아내 생산에 반영하고는 했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니 그것이 되지 않아 처음에는 많이 답답했다. 베트남까지는 네시간 반 남짓이 걸리니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베트남에서 귀국 후 한 달 이내에 재입국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가 상당히 번거롭다.) 물론 첫 출장에서 그런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단가를 협상하고, 계약서 작성을 끝으로 생산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까, 고대하던 초도 생산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검수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총 1,000개를 주문하였고 혼자서 전부 검사하기에는 손이 부족할 수 있지만 전수검사를 해야한다. 벤더 분께서 생산 초기부터 현장에 자주 방문을 하시고, 나에게 생산 현황을 시시각각 전달해주시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생산 라인 전체를 살펴보고, 제품을 하나씩 직접 살펴보는 것은 필수이다.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일인 것 같지만 체류 기간을 늘리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5일의 일정으로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리뉴얼 작업을 함께한 공장은 하노이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하이퐁'이라는 도시에 위치해있다. 우리나라 분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롱베이'에서 2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에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하이퐁의 '캇비 국제 공항'으로 입국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여름은 시작하지도 않은 5월의 어느날이었지만 출장 덕분에 처음 경험하게 된 베트남은 이미 볕이 드는 곳의 모든 것을 익어버리게 만드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하기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다. 동행하신 벤더 업체분과 함께 바로 공장으로 향했다.



분명히 이곳은 베트남에서 매우 작은 규모의 공장이라고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용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는 상주 직원의 수가 20명만 넘어가도 굉장히 큰 공장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허나 이곳에는 이백명이 넘는 분들이 상주하여 근무를 하고 계신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라인에 들어서자마자 완성된 본체를 살펴본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천만 다행으로 가방의 상태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봉제도 튼튼하였고, 마감도 깔끔하였다. 초도 생산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물 덕분에 졸였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크로스백에서 문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단은 정말 사소했다. 최종 샘플이 나온 후에 아주 간단한 변경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 하필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크로스백 속 매쉬주머니의 고무밴드 길이를 조금 줄였는데, 그것 때문에 크로스백 내부의 장력이 커져버렸고 이로 인하여 크로스백이 약간 뒤틀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가방의 형태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니, 문제점 자체는 사소했지만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이후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통에 한국에 돌아올 때 까지 제대로 찍은 사진도 몇 없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다름 없었다.



'저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하다면 답은 간단하다. 천 개의 가방을 만들었으니 크로스백도 천 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천 개를 다 찾아내서 하나씩 확인하면 된다. 전부 확인해서 잘못된 것은 수정을 요구하고, 수정이 되면 그것을 다시 검수해서 온전한 가방이 천 개가 될 때 까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너무 무식한 방법이 아닌가 싶을수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여 제대로 된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거진 이틀간은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지냈다. 공장 곳곳에 뿌려진 천 개의 크로스백을 한 장소로 모은 다음, 공장의 한 켠에 쓰고 버린 박스를 잔뜩 깔아놓고 한 개 씩 검수를 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것은 바닥에 잘 보이게 정렬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수정하기 좋도록 뒤집어서 한 봉투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천 개를 모두 확인하고 나니 문제가 된 크로스백은 약 180개 가량. 별 수 없다. 모조리 수정을 요구하는 수 밖에.



앞으로 가야할 길이 구만리 창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더욱 배를 든든히 해야한다. 무거운 마음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업체 분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반까오'라는 한인 거리로 향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한국 소주와 삼겹살로 하루를 마무리 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는데,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도 없었다면 아마 제 정신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첫 3일은 초조함과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작업하시는 분들께 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분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소일을 하다보면 수선된 크로스백과 완성된 본체가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러면 공장 안으로 들어가 검수를 시작한다. 재수정이 필요한 것은 한 곳에 모아 라인으로 반송하고 양품은 포장반으로 넘기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지겨운 일이고 가끔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싶을때도 있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절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3일째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로스백은 대부분 수정이 완료되었고, 완성품이 쏟아져나오는 것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가방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제사 주변을 조금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하이퐁은 LG전자가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곳이다.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공장이 이 곳 하이퐁에 있다. 내 가방이 쏟아져나오는 곳으로부터 걸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한적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여유가 생겨 잠시 시내도 들러보았다. 단언컨데 베트남에 간다면 이 '코코넛 커피'는 반드시 마셔야한다.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입국심사와도 같은 것이라서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니 꼭 참고할 수 있도록 하자.



5일 간의 베트남 출장은 토요일 오전, 천 번 째 가방을 검수함으로써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조금 더 많은 사진과 함께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지만, 워낙 정신이 없었던 터라 기록을 남길 틈조차 마땅찮았다. 부디 더 좋은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생각하시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저 무난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5일이었지만 덕분에 더욱 좋은 품질의 가방을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었고, 많은 분들께 좋은 가방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워낙 까탈스럽게 많은 것을 요구했던터라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완벽하게 수정하여 양품의 가방만을 만들어주신 공장 분들께도 무척 감사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겠지만 더 좋은 가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날로 발전하는 트래블러스 하이가 되기 위한 노력 역시 계속 될 것이다.





어김없이 예쁘다. 대만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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