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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Dec 19. 2021

트레바리 후기

솔직한 후기!

2021년 09월부터 12월까지 완주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찐 후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노션에서 보면 더 편해요!)

트레바리

트레바리는 한국의 살롱문화를 대표하는 서비스입니다. 독서모임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강연이나 커뮤니티 성격의 모임까지 확장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성장 중인 기업입니다.

17~18세기 살롱문화

살롱 문화는 먹고사는 걱정이 없던 17~18세기 귀족들의 사교 문화였습니다. 겉으로는 같이 커피나 티를 마시고 같이 취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전략적으로 포섭해야 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로비활동의 산실이었죠. 더 얕은 레벨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아닌, 귀족이라는 검증된 사람들 중 괜찮은 사람과 커넥션을 만들 수 있는 성공확률인 높은 커뮤니티였던 셈입니다.


트레바리를 한국의 살롱문화라고 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마치 연회비같이 일정 금액을 문화활동에 지불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관심사도 비슷한 사람이 온다는 것이 거의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해 다른 방면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런 점이 귀족들의 티타임과 닮아있죠.


모임의 형태

룰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입니다. 그동안 지정된 책을 한 권 읽어야 하고, 400자 이상 분량의 독후감을 작성합니다. 모임 2일 전에 독후김을 제출해야 하고, 제출하지 못한 사람은 해당 회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클럽장이나 파트너는 발제문을 준비하고, 모임 당일 발제문과 독후감들을 기반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합니다. 모임 시간은 3시간 정도이고, 모임 전후로 간단히 식사나 술자리를 통해 더욱 모임을 곤고히하기도 하지만 이는 모임의 성격이나 파트너에 따라 다릅니다.


공식 모임은 1달에 1회라고 하지만, 비공식 모임으로 번개모임을 합니다. 간단히 술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전시나 영화를 보러 가는 등의 문화활동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22만 원의 가치

22만 원은 정말 큰돈입니다. 2일 치 급여에 해당하며 1달 월세의 절반에 해당하고, 1달 식비에도 부족함 없는 금액입니다. 이 돈을 단순 독서모임에 참여할 권리를 구매하는 데 사용한다니(심지어 평생도 아니다)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트레바리 측에서 제공하는 것은 공간, 그리고 사람.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독서모임의 내용엔 관여하지 않습니다. 클럽장이나 파트너라고 부르는 14~15명의 독서모임 인원을 관리하는 사람은 똑같이 독서모임의 일원으로 참여시키고 급여 없이 참여비용을 없애주는 정도입니다. , 트레바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많지 않다는 것이고, 모임이 유지되도록 관리 시스템(웹, 앱, 관리자) 구축한 것뿐입니다.

홈 스크린(좌) 빈약한 텍스트 에디터(우)

그렇다면 여기에 22만 원의 가치가 있느냐? 전혀.  대답은 전혀 없다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이미 많이 구축되어 있고 무료로도 풀려있습니다. 또한 트레바리의 서비스가 디테일한 사용자 경험에 특화되어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에서 메인 기능  하나인 독후감 작성 페이지는 기능이나 만듦새가 빈약했고, 심지어 작성한 글이 원하는 대로 렌더링 되지 않는 오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돈을 내고 기꺼이 독서모임을 나오는 이유와 다른 저렴한 모임보다 빠르게 성장 중인 이유는 정말 단순합니다. 바로 22만 원을 내고도 올 사람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비슷한 서비스가 30만 원을 내야 하고, 50만 원을 내야 하면 조금 느리겠지만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짝 비싸다고 여겨질 정도의 금액을 넘어선 이상, 가격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꺼이 그 돈을 내고서라도 나와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표현한다면 30만 원짜리 클럽에선 30만 원만큼 검증된 사람들이, 50만 원짜리 클럽에선 50만 원만큼 검증된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즉, 트레바리는 22만 원에 검증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보증서를 판매합니다. 사람들이 영화 평론 잡지를 구매하는 논리와 비슷합니다. 평론가는 수백 편의 영화를 미리 보고, 평점이나 평론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강력히 봐야 할 영화나 절대 보면 안 되는 영화 등의 키워드로 필터링을 해줍니다. 사람들이 엄한 시간을 쓰지 않도록 필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죠. 트레바리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을 필터링해주죠.


후기

제가 참여한 클럽은 스타트업 - 창업하기였습니다. 참여한 목적은 내년에 창업에 도전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창업을 강의로 배우는고싶지는 않았고, 궁극적으로 창업가가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노하우 같은 부분들을 듣고 싶었고, 더 나아가 추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같이 프로젝트를 꾸려나가는 그림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 다르게 창업이라는 범주는 매우 넓었습니다. 개발자인 저는 플랫폼 비즈니스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파트너님부터 모임 구성원들은 대부분 자영업이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은 소규모 개인 창업을 하시는 분이었고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대했던 효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독서모임 자체는 내실 있게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주 만족했습니다. 이 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법한 책을 추천받고, 그냥 읽고 독서록만 쓰는 게 아닌 깊이 있는 토의를 통해 책을 파해치기 때문에 최소한 여기서 읽은 4권의 책들의 내용은 까먹지 않고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쉬웠던 점은 뒤풀이나 번개 모임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독서모임에서 얻어가는 점도 많죠. 하지만 번개모임이나 뒤풀이에서 얻는 점도 많습니다. 애초에 검증된 풀에서 건강한 커넥션을 만들겠다는 이 서비스의 목적에 부합하는 중요한 기능(은 아니고 권장사항)인데 코로나라는 악재와 애매한 모임 시간(저녁 6시)때문에 모임 전에 간단히 저녁 먹는 시간 한번 가진 것 말고는 따로 모인 적이 없어서 뭔가 사석에서 나눌만한 대화들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스몰토크를 통해 이것저것 공유하는 시간이 권장이 아니라 보장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놀러 가기 기능으로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해소할 수 있었는데, 3시에 모여서 열심히 모임을 진행하고 6시부터 간단한 음주를 곁들인 뒤풀이를 진행했습니다. 역시 이런 자리를 통해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요즘 사는 이야기부터 관심사 같은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검증된 사람들이구나. 다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다 보니 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대화 자체에 대한 매너가 뛰어났습니다. 오디오가 비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재밌게 떠들어댔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술자리라고 해도 대화 자체가 놀고먹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산적인 이야기나 건강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단점

첫 번째 단점은 명확합니다. 비싸다는 것. 위에도 서술했지만, 절대적인 금액만큼은 정말 비쌉니다. 처음에 트레바리 한번 해보겠다고 주변에 말했을 때, 설명을 해주니 진심을 미쳤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넷플릭스와 멜론을 1년간 구독할 정도의 돈이니까요.


독서모임이라는 성격이 점점 껍데기처럼 느껴진다는 점도 단점에 포함됩니다. 이건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 이유는, 애초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경험에 대한 공유, 발제와 관련하여 들었던 강연 내용이나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같이 더욱 포괄적인 대화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노골적인 섹슈얼 마케팅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마 커뮤니티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인 남녀 간의 만남을 배제할 수 없기에 트레바리 측에서도 이를 타게팅한 모임들을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듀오바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이 방면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이게 절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북클럽이라는 아이덴티티까지 내려놓으면서 할 만큼 급한가? 싶은 것입니다.


제가 이걸 단점으로 꼽은 이유는 사람들이 첫 모임 이후에 많이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 아마 트레바리 측은 통계를 가지고 있을 텐데, 몇 퍼센트인지 궁금하군요. 그 이유는 클럽이 마음에 안 든다던가, 책이 마음에 안 든다던가 하는 이유보다는 구성원 중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가 이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솔직한 후기를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 아마 집계되지 않는 궁극적인 탈퇴 이유일 것이고요. 이 때문에 트레바리의 아이덴티티가 만남의 광장이 돼버린다면 본질이 흔들리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음에도 할 의향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심지어 과감히 주변 사람에게 트레바리를 추천할 자신도 있습니다. 이미 트레바리 안에는 충분히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이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소비합니다. 현대의 플랫폼 서비스는 이용자의 시간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즉, 시간을 돈으로 사는 개념이죠. 이러한 관점이 사람을 만나는 문화에도 적용되었다고 보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다음 모임은 기획자들 모임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개발자로서 기획자와 가장 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간단한 프로젝트성 사업을 진행할 때도 기획자로서의 역량이 필요하고 친한 기획자들의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모임이 끝나면 파트너를 지원해볼 생각입니다. 이점이 많지만 큰 책임은 없기 때문에 안 하면 손해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Outtro

결론은 재밌었습니다. 많이 배웠고, 좋은 사람들과 양질의 대화를 맘껏 나눴습니다. 22만 원이 아까우냐고 말한다면 결제할 때 마음과 마지막 모임이 끝난 지금의 마음이 많이 다르다고 말해드리면 될까요. 지나고 보니 뭐 아깝진 않고 그렇네 정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경험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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