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무리하며
결국 코로나는 더 심해졌고, 예상했던 대로 방역정책은 강화되었습니다. 전과 다른 비상사태로 인해 기존에 선언되었던 수칙보다 강력한 제제에 지레 겁을 먹었던 28살의 나는 후회할 뻔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천혜의 정신병원에 와서 모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심지어 여행 중에도 더욱 강화된 방역수칙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여차저차 미루다가 지금 출발하는 것 보단 100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출발할 때 상황이 지금과 같았다면 아마 이 정도라면 나는 아예 시도도 안했을겁니다. 전역 직후 여행을 가려고했을 때 상황이 이와 비슷했거든요. 다시 여행을 계획하고, 여러 제한에 걸려 좌절하고 있을 때 내 마음속으로 되뇌이던 말은 28살의 겨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내 삶에 진심이라면, 결코 이 아까운 순간들을 경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창시절 수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 뭔가 배운다라는 뜻입니다. 왜 그냥 편히 쉬거나 즐겁게 놀다 오게하면 될 껄, 꼭 뭘 배워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의 보고서를 위한 알량한 껍데기였을 것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에 맞게 대부분 여행에서 배움을 얻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여러가지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나니 이제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소했던 비행기 탑승 과정을 완벽하게 익혔고, 책으로만 보았던 외국의 문화와 유산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읽을줄만 알았던 영어를 이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외국인에 대한 벽을 허물게 되었습니다. 뭐 대단한건 아니고, 꼭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같이 소통을 요하는 행동에 거리낌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나 할까요.
스스로도 쉼이라는 개념에 대한 깨우침을 얻은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조바심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인터넷 강의를 켜두고 게임을 하는 학생처럼 마음 한켠에는 뒤처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몸은 방전되었으니 충전하면서도 계속 동작하는 휴대폰마냥 꺼지지 않고 스스로를 혹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테네리페 섬에 가서 보니 어린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푹 쉬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반려견들마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쉽니다. 그 누구도 휴식하러 와서 일을 하지 않았고, 자기계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행태가 사회 전반에 걸친 공감대와 문화적 인프라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당연히 쉼을 경험한 유러피안들과 다르게 우리에겐 약간은 어색하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분위기에 올라타기엔 오랜 시간과 인식개선이 필요하겠지만, 조속히 전파되어 모두가 저들과 같은 여유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2주째가 되던 날인 마드리드에서 였습니다. 한식과 같은 향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고, 100%까지 완전충전된 상태로 7시간 정도 더 방치된 내 휴대폰을 보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겨우 10%~20%였던 나는 힘들어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방전될 것 같은 기분 뿐만 아니라 언제 방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비싼 충전기에 내 몸을 맡긴 채 2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과충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혼자 다니면서 관광만 한게 아니라 몇몇 동료와도 같이 다니며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쭉 빠지는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아마 느끼기에는 과충전된 기분이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다. 그런 상태에서 목적부터 휴양지인 섬에서 1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보같이 이 곳까지 와서도 관광을 생각하고, 비행기 스케쥴이나 숙박 계획을 잘못잡아 꼬여버린 PCR검사 등을 해결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오기 전에 마음을 정리하고 푹 쉬고 가겠다는 간단한 계획만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비로소 저는 온전히 100% 충전되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섬에서의 1주일을 마무리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홀가분히 하룻동안 쇼핑을 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뭔가 이번 여행은 복합적이었네요. 2주간은 내가 몰랐던 세상과 마주하고, 1주일 동안은 푹 쉬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과충전되었다고 느꼈던 점은 그저 제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배부른 소리였다는 소리지요.
과연 내년이면 서른인 제가 다시 여행 목적으로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만약 배우자라도 생긴다면, 몰입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금전적인 제한에 걸린다면. 여러가지 제한사항만 생각하다보니 아무래도 이제 다시 해외에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주면 노동법이 보장하는 연차인 15일을 단 하루도 쓰지 않고 모아도 불가능한 일수니까요. 또한 일주일만 업무공백이 생겨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니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벌더라도,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방향이 지금은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맞지 않더라도 점차 의식이 개선되며 인정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때는 아마 현실감을 가지고 다시 쉼을 경험하러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