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유럽 사람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와 비슷합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제주도는 우리 기준으로 최남단에 있는 섬이라 서울보다 약간 더 따뜻한 수준이지만 이 섬들은 아예 아프리카에 붙어있다 보니 매우 따듯합니다. 오늘(1월 11일) 기준 서울은 한겨울 날씨일 텐데 테네리페 사람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정도입니다.
저는 5일 동안 이곳을 여행했습니다. 사실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여행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관광이나 액티비티를 하지 않았으므로 휴양을 했다고 정정하겠습니다. 누구나 사랑할 날씨와 자연경관을 가진 섬, 카나리아 제도의 중심 테네리페 섬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지만, 첫인상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게 컸습니다. 이 당시 여행 2주 차를 마무리하고 3주 차에 접어드는 시기였는데 너무 오래 놀아서 그런가 서울에 가고 싶었습니다. 이놈의 조급증이 또 도져버린 것이죠. 또한 이전까지의 여행도 100%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절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테네리페로 이동하기로 한 날 저는 오전 11시에 마드리드 에어비엔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구글맵이 경로를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돌아 돌아 1시간이나 걸려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30분 연착되어 테네리페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다 되었습니다.
회색 날씨 때문에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은 상태에서 본 공항버스에 대한 설명은 불친절했습니다. 겨우겨우 탄 버스는 무려 13유로에 숙소까지 1시간 30분, 거기서 걸어서 30분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곳에 숙소가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나니 밥도 못 먹고 저녁 9시가 넘어버린 상황이었죠. 또한 오는 길이 바르셀로나나 세비야처럼 아름다웠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시골 도시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어두컴컴한 거리에는 자동차들 또한 별로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 온 뒤는 항상 맑다고 했던가요, 전날까지의 안 좋은 기분과 첫날의 흐린 날씨는 다음 날의 빛나는 날씨를 더 빛나게 해 주기 위한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제 첫인상을 단박에 박살 낸 것이 바로 날씨입니다. 도착한 날엔 구름이 낀 초저녁이라 첫인상이 별로였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까지도 제 방에 햇볕이 한 줄 기도 들어오지 않아 날씨가 좋은지 몰랐습니다. 오기 전부터 안 좋았던 기분이 도착까지의 고된 여정으로 극에 달해있었고 꿀 같은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음에도 이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나가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최고의 휴양지까지 와서 산책도 안 하면 안 되겠지 하며 세수만 하고 맞이한 테네리페의 날씨는 정말 말이 안 나오게 좋았습니다. 이게 정녕 1월의 날씨란 말인가. 아프리카 옆동네라 그런지 기온 자체가 낮고, 전형적인 섬 날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살랑살랑 부는 바닷바람까지 더해져서 정말 겨울 중에 최고랄까요.
머무르는 5일 동안 하늘에 구름 한 점 있는걸 못 봤습니다. 항상 파란 하늘에 한국보다 1.5배는 크게 보이는 태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도 많았고 해변에 가보니 다들 수영복을 입고 햇볕 아래에서 광합성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테네리페 남부의 아데헤라는 해안가 근처 조그만 동네에 머물렀습니다. 사람이 북적북적한 곳만큼은 피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괜히 액티비티나 관광을 위해 혹은 섬 전체를 둘러보겠다는 욕심에 하루마다 숙소를 옮기는 것은 최악이기 때문에 한 곳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아침엔 9시쯤 일어나서 10시~11시쯤 산책을 나갑니다. 나가자마자 집 앞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요. 아침과 커피를 함께 해결하죠. 스페인에서는 사람들이 혼자 와서 풍경을 보며 가볍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갑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가능할 겁니다.
이런 환경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조금은 멀리 산책을 나갑니다. 구글맵을 보고 적당히 갈 위치를 찍어놓고 보면서 가지만 올 때는 일부러 다른 길을 걷습니다. 최대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일부러 길을 잃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걸을 수 있거든요. 걸으면 걸을수록, 더 걷고 싶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테네리페는 섬이다 보니 해변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든 면이 바다다 보니 어떤 바다를 가던지 비슷한 뷰를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굳이 그 안에서도 유명한 해변을 고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다를 5일 동안 2번 갔는데, 둘 다 숙소에서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작은 해변이었습니다.
해변엔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쓴 저를 모두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 무방비 상태로, 햇볕을 즐기기 바빴습니다.
노인, 청년, 어린이 그리고 반려동물까지 스스로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휴식하는 유러피언들과 같은 마음과 행동을 갖지 못한 저였지만 그들에게서 진짜 일이든 인간관계든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편히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에는 벤치나 자연스럽게 디자인된 의자 등 앉을 수 있는 시설이 도처에 깔려있어 오래 걸어도 부담이 없습니다. 특히 바닷가 근처에서 물멍하기 좋게 벤치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바닷가의 경우 정말 훌륭한 전망대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이런 관광지에서의 외식물가가 배로 비싸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꽤나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식당들은 그 동네에서 가장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좋아서 마치 자릿세 개념으로 돈을 더 지불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테네리페에서 여행객이 아닌 일반적인 백수의 일상과 같은 하루들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울에서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던 날들이 여기에선 재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한국에서의 퇴근 후와 주말의 삶은 온통 불안감과 조급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왔기 때문에 편하게 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테네리페 섬은 유럽의 제주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휴식하러 갈 때 제주도를 찾듯 스페인뿐만 아니라 온 유럽 사람들이 이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을 찾거든요. 하지만 유러피안들이 휴양지를 소비하는 방식은 우리가 제주도를 소비하는 방식과 매우 다릅니다. 이곳엔 맛집 개념이 없고, 관광 명소 같은 개념이 없다고 느껴졌거든요. 다들 그저 좋은 사람들과 가까운 해변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뿐입니다. 놀러 오는 곳이 아닌 쉬러 오는 곳. 테네리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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