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29살의 마지막 월급날.
처음엔 다들 우선 1,000만 원부터 한번 모아보라고 합니다. 무척 어렵지만 모으고 나면 그 성취감과 뿌듯함, 돈 모으는 재미 등의 심적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1000만 원이 쉬운 목표도 아니고 어떤 의미 있는 마일스톤은 아니지만, 한번 모으는 시늉이라도 취해보라는 뜻이겠지요. 끈기 있게 한번 매달려보라는 의미기도 할 것이고요. 한 달에 200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이라고 가정할 때, 쓸 거 쓰고 간신히 50만 원 정도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 2년 조금 안 걸리네요.
저도 이 목표를 가졌던 날이 있습니다. 알바로 조금 벌고 조금만 쓰던 시절을 지나 장교로 임관한 다음 1년 안에 모았어요. 한 달에 3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네요. 처음으로 1000만 원을 가져본 날이라 기쁨보다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 제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건 아닌데 그래도 돈을 쭉 모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제가 29살의 12월, 마지막 월급날 순자산 1억을 달성했어요.
첫 알바치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스타힐 리조트라는 스키장에섯 스키강사로 일했어요. 일이라는 걸 처음 해봤고 월급도 처음 받아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일을 엄청 시키고 돈은 엄청 적게 주던 곳이었네요. 다른 스키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고 옮길까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날 정도로요.
스키장에 마련된 강사 & 패트롤 전용 숙소에서 아침 6~7시에 일어나 강사 대기실을 청소하고 9시 강습 전에 스키연습을 한 다음 저녁 6시까지 스키 강습을 3타임 정도 뛰고 저녁에 스키 연습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많게는 하루 15~16시간씩 스키복을 입고 있었어요. 그렇게 주말까지 일했고 한 달에 하루 쉬었습니다. 근데 명세서에는 영업일로는 24일이 찍혀 있네요. 주말은 안 넣었나 봐요. 그땐 이런 개념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주는 대로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한 달에 하루 쉬고 매일 평균 12시간씩은 일하며 87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이때 저는 돈을 최대한 벌어둬야 했어요. 서울의 사립대학교들은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붙었지만 못 갈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재수를 위해 강사 월급을 다 모았습니다. 보통 1년 차 강사들은 추후 강사생활을 위해 장비를 구매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나중에 강사로 4년을 더 일했지만요. 물론 감사히도 이걸로 학원비는 다 낼 수 있었어요. 수능성적으로 80% 할인을 받아서 다녔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대부분 19~ 26살인 대학 입학부터 졸업 전까지가 정말 재밌고, 유익하다고 하는 시기가 제 인생의 암흑기였어요. 만약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비걱정이나 인강 걱정을 안 했더라면, 돈이 제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은 항상 제 걱정이었거든요.
그래서 대학생활을 할 땐 항상 알바로 예비비의 예비비까지 벌어뒀고, 돈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국립대학교라 매 학기 국가장학금으로 학비는 깔끔하게 해결했지만 그래도 지방에서 다녀서 기숙사비나 생활비까지 다 제가 해결하려니까, 방학과 학기 중 알바를 꾸준히 했는데도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생활비 대출을 매 학기 100만 원씩 받아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 3학년부터는 기숙사를 다닐 수 없게 되어 자취방을 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학군단을 하면 기숙사 100% 배정해준다고 했고, 군생활을 장교로 월급 받으면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덜컥 지원해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제 인생 중 가장 큰 사건이었고, 1억 모으기에 제일 많이 기여한 액션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어요.
이후엔 정말 힘겹게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아르바이트하고 수업 듣고 학군단 활동하고를 반복하면서 2년을 그 작은 돈을 굴려가며 생활했던 것 같아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하나 제대로 못하고 버텼던 날들이었기 때문에요. 당시 학군단에서 일본으로 단체여행을 보내줬는데, 저는 돈이 없어서 10만 원밖에 환전할 수 없었어요. 집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손벌릴 수도 없었고, 재밌게 노는 건 중요하지만 우선순위가 높진 않았으니까요. 뭐 생각하면 이런 기억들 뿐이에요.
보통의 대학생들은 사회로 나오기 전에는 돈을 모으기 힘들어요. 그래서 군전역자 기준으로 빠르면 26살 정도에 경제생활을 시작하죠. 저는 조금 달랐어요. 장교로 임관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2년 정도 빠르게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재수 때문에 명확히 말하면 1년이에요. 그렇게 25살에 알바가 아닌 직업을 가지고 받은 월급을 처음 받아봤습니다. 160만 원 정도 되네요. 당시 7급 공무원 기본급과 같아요. 여기서 성과급이 조금 더 붙지만, 이 때는 교육기관에 있을 때라 기본급만 받았습니다.
진급했을 땐 기본급으로 10만 원 더 받았어요.
공무원들은 매달 이것저것 명목으로 추가수당을 받아요. 저희도 받았습니다. 평균 20만 원 정도를 받았던 것 같은데 아래 사진은 가장 많이 받았을 때에요. 저는 격오지 근무를 해서 위험수당도 있었고, 초과근무를 많이 해서 받은 수당도 있어서 60만 원 정도를 수령했었네요.
1년에 2번 있는 명절에 받는 돈은 급여의 60%인 100만 원 정도, 1년에 1번 받는 성과급은 정말 성과에 따라 준다곤 하는데, 저희 같은 단기복무 장교들은 그냥 평균에서 평균 이하로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역하고 난 다음 달에 퇴직금이 들어왔어요. 퇴직금도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는데, 선물 같더라고요. 사실은 당연한 권리였는데.. 이거 받았다고 좋아서 부모님 선물드리고 했던 기억도 나고 해요.
대학교 2학년 때 학군단에 붙었기 때문에 당시 친구들이 “너 2020년에 전역이야”라고 놀려댔는데, 2020년은 결국 왔습니다. 진짜 안 올 줄 알았는데, 왔어요. 이제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친구들 대기업이나 공무원 준비할 때 저는 빠르게 직무경험을 쌓기 위해 연봉은 낮더라도 얼른 개발자로 일을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연봉 3000만 원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연봉이 중요하다고 주변에서 많이 말렸지만, 제2년 반의 공백에 무슨 그 연봉이냐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대신, 당시엔 이제 돈을 정말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에 1년 동안 가계부 및 주간 재무 회고를 했었어요. 지금도 당시 운영하던 네이버 블로그에 가면 볼 수 있는데 공개하고 싶진 않네요. 투자도 좀 했는데 1년을 놓고 보니 거의 쌤쌤이었고, 거의 정직하게 월급을 모았다고 볼 수 있어요.
아래 사진은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 썼던 순자산 6000 돌파했을 때 쓴 글인데, 첫 회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회사를 구할 때에요. 이때 투자가 잘되던 때여서 뭔가 이렇게 모으다 보면 30살에 1억 되겠는데?라고 막연한 생각에 관리를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두 번의 이직과 세 번의 연봉협상 끝에 꽤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어요. 사실 1억 모으기는 연봉협상 성공과 스타트업 치고 이례적인 성과급을 뿌린 덕에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연협도 실패하고 성과급 따위도 없는 회사였다면 아마 한 8천만 원 수준에 머물렀을 거예요. 제가 조금 절약하고, 위험한 투자도 안 했다는 점도 기여했겠지만 가장 큰 공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절약의 엄청난 기술이 있거나 투자의 귀재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엄청난 부업 작업량, 사업수완, 꿀알바 찾아다니기 등으로 도달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냥 쓰고 남은 돈을 통장에 쌓는 사람입니다. 그저 때가 되면 회고를 하며 얼마정도 모았구나 하고 되돌아보고, 매일 가계부에 들어가본 정도(?) 가 제가 한 노력이에요.
저는 투잡을 할 의향은 있지만 지금까지 투잡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저에게 투자했어요. 퇴근하곤 제 커리어에 관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으며 주말엔 스터디를 나가고 독서모임을 나갔습니다. 올해 더 투자할 예정이고요. 저는 이런 점들이 모여서 현재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나를 평가했던 회사들로부터 지금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투잡을 위해, 혹은 현재의 편안함을 위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더라면 처음 받았던 연봉에서 앞자리 숫자는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 3년 차밖에 안 된 상태니까요.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지만 더 배우고, 생각을 확장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퍼포먼스를 내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잔고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 만감이 교차할 줄 알았어요. 근데 마치 29살의 12월 31일 밤처럼, 별 느낌 없어요. 저는 돈을 모으는 이유가 없거든요. 차를 사야지, 유럽 여행 가야지와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돈이 없어서 비참했던 기억들이 방어기제로 자리 잡고 있어서 어느 정도 모아놔야겠다는 목적 없는 목적이 작용한 것 같아요. 사실 그럴 바에는 1천만 원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없는데 말이에요.
계획을 잘 세우고 지키는 법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선 동기부여를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꼽았어요. 계획을 세울 때와 지킬 때, 동기부여가 없는 계획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저는 돈을 모으는 것도 하나의 계획이라 생각하고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도저히 뭘 사고 싶어서 같은 목표는 찾을 수 없어서, 조금은 추상적으로 부모님 아프실 때를 대비해서, 동생이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고 할 때를 대비해서, 내 꿈을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할 때를 대비해서와 같은 보험성 목표를 여러 개 설정하려고 해요. 이렇게 되면 액수는 명확하게 정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동기부여는 될 수 있겠죠.
2023년 새해는 밝았고, 신년 목표의 재무계획은 순자산 3,000만 원 더 모으기입니다. 천만 원 단위로 마일스톤을 세우고 그때마다 평가해보긴 할 건데, 올해의 제가 잘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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