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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y 21. 2023

그 옳은 의사결정은 옳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가 아니라 사람들과 일합니다.

 어떤 문제에 당면했습니다. 조직의 리더로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고, 적중하여 회사와 고객 모두가 행복한 어떤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걸 다시 잘 포장해 본다면 화려한 회의나 문서와 같은 허례허식 없이 가용한 리소스를 모두 투입하여 문제를 해결한, 가히 요즘 IT 스타트업 다운 일처리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행복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의사결정

의사결정, 참 어려운 용어입니다. 누구나 매일 숨 쉬듯 수많은 결정을 내리지만, 회사에서 발생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한 결정으로 정의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게요.


 과거엔 크고 작은 조직의 리더들이 모든 정보를 하급자로부터 수집하고 결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최근엔 실리콘벨리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국내에도 IT 스타트업 사이에서 직급이 사라지고 수평적 문화 내에서 치열한 의사소통을 통해 가장 좋은 답을 빠르게 얻어내 결정하는 구조로 변모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결정권이 없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빠르게 결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크게 다른 구조는 아닙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한다면 방법론은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옳은 의사결정

 공공연하게 여겨지는 옳은 의사결정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함에만 집중하여 리소스와 시간을 투자해 회사와 고객이 모두 만족할 결과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운영 간 발생한 긴박한 사고에 대한 수습을 예시로 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중장기적인 결정도 포함됩니다. 회사의 방향에 맞게 현재 상황에서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면 그게 옳은 의사결정일 거예요.


틀린 의사결정

 틀린 의사결정은 쉽게 말하면 옳은 의사결정을 하지 않은 의사결정입니다. 극단적으로 이분법으로 말했지만 결과론의 측면에선 그렇습니다. 보통은 왜 틀렸는지 모르고, 즉 옳은 의사결정인 줄 착각하고 내리곤 합니다. 그만큼 노하우와 역량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틀린 의사결정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거나 투자한 리소스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게 합니다.


 여기까지 종합해 보면 리더는 역량을 갈고닦아 항상 회사에 제일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리더는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내하고라도 이따금씩은 틀린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왜 틀린 걸 알면서도 그런 의사결정을 해야 할까요?


숨은 가치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람들과 일하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인정받는 현대의 문화 속에서 쉽게 잊히는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이상 말이에요. 때로는 사람에 따라 어떤 좋은 의사결정을 유보하기도, 조절하기도 해야 합니다.


유지 가능성

내 뛰어난 역량으로 해낸 결과물들이, 내 퇴사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문제해결이라고 가정했지만, 사실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존속이에요. 어떤 슈퍼스타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동료들은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조직에서 신뢰나 기여도가 높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모듈 하나 만들 때마다 문서를 만들고 모듈 위에 그 문서 링크를 코멘트로 달아놨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회사 프로덕트에 기여하기 위해, 협업 간 혼란을 없애기 위해 했을 수 있지만 동료들은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줄 알고, 코드 작성하기도 바쁜데 무작정 모듈 하나 만들 때마다 필요도 없는 문서를 만들며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동료의 감정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에 현재 담당자보다 다른 사람이 빠르게 해결할 줄 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문제가 생겨서 현재 담당자가 뻔히 지켜보는 와중에 그 일을 담당자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해볼게요. 담당자인 사람은 어떤 감정이 들까요?


 우선 허탈함을 느낄 것 같아요. 내가 담당자인데 다른 사람과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몸은 편해도 마음은 편하지 않을 거예요.


 또한 일을 뺏겼다고 느끼고 상실감이 들 수 있어요.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가 신뢰를 잃었나?”, “나에게 일을 안 주려는 건가?”, “실수한 거 있나?” 등등 좋지 못한 의구심이 들 것 같아요. 그 끝엔 이 조직은 나 없어도 잘 돌아간다고 느끼게 됩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스스로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을 지시하거나 해달라고 했는데 안 하거나 못하면, 내가 해버리지 뭐 하고 진행하는 유형도 있습니다. 저는 이 경우가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로 하여금 심한 박탈감을 들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문제를 진짜 문제라고 공감하지 않았을 수도, 우선순위가 낮을 수도,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지시나 협조를 요청했지만 안돼서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직접 했다면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수 있지만 이건 일 잘하는 사람,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자만에 가득 차 조직을 망치는 사람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동료들의 외면일 것입니다. 어차피 그 리더 마음대로 될 거니까, 그냥 대화할 비용 아껴서 내 일이나 하자 하고 리더가 하자는 대로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리더는 자신의 능력대로 합리적으로 일이 돌아간다고 여길 것입니다. 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팀처럼 일하고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만약 우리가 리더로서 공공연하게 옳다고 여겨지는 의사결정을 내렸고, 포스트모르템을 위한 문서를 작성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아마 그 문서엔 아마 위에서 언급한 숨은 가치들이 들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객관적인 수치로 평가된 다양한 지표를 활용해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고, 전반적인 해석과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이 포함된 전형적인 문서가 되겠죠. 그 과정에서 소모된 사람들의 감정과 문제 외적의 가치들은 보통 포함되지 않으니까요.


 우리 옆의 동료는 잘 만들어진 코드로 돌아가는 응용프로그램이 아니니까요.


리더의 시각

 우리가 협업을 하고 작더라도 조직을 이끄는 상황에서 당장의 문제해결을 위해 내리는 의사결정이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그럴듯하게 들리더라도, 리더의 시각에서는 더 넓게 바라봐야 합니다. 그 영역은 섬세한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고요.


 우리가 팀을 이뤄서 일하는 이유가 뭘까요? 혼자서 이것저것 작은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어도, 팀이 필요할 만큼 거대한 문제를 풀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작은 문제들에서 팀을 해치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리더는 정작 풀어야 할 큰 문제에서 허덕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도 한낱 작은 사람 중 하나인걸요.


마치며

 이 글을 읽고 동료들과의 차이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혀를 끌끌 차며 비난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동료의 감정까지 다루기엔 일이 너무 많고 신경 쓸게 많잖아요.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환상적으로 내린 의사결정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돼야 할 일을 안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해결에 앞서서 동료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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