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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y 07. 2023

내향인의 춤 배우기

댄스 만학도의 길

 저는 30년째 살면서 외향적인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글쓰기와 책 읽기, 운동이라면 축구나 농구 같은 교과목 같은 종목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춤을 배워봤습니다. 그것도 원데이 클래스도 아닌 강습으로요. 


동경의 대상

 저에게 춤은 그야말로 인싸들의 전유물이었어요. 나 같은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그런 문화? 정도였죠. 그래서 춤이나 노래는 콘텐츠로만 즐기고 실제로 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가장 처음 이 문화를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저는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공부만 하는 자율형 사립고를 졸업했는데, 공부만 해야 할 고3 친구들이 갑자기 댄스 동아리를 만들더니 도서관 옆 쉼터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춤 연습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당시엔 선비처럼 혀를 끌끌 차며 애들이 너무 힘든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취미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때 나도 할걸!!"이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


놀이의 대상

 하지만 실제로 해본 결과, 춤은 재밌는 놀이 중 하나였어요. 좋은 운동이기도 하고요. 스스로를 표현하는 예술이기도 해요(물론 저에겐 아직 예술까진 아닙니다). 되이려 수많은 운동들 중에서도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낮기도 하고, 돈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재미도 있고요. 


 배움의 재미 또한 있어요. 생각보다 어렵지만 기본기를 조금씩 익히면 신경 쓸 부분이 줄어들고 많이 춰보면  배우는 시간도 짧아지는 면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처음에 조금 삐그덕 삐그덕 각목처럼 움직이더라도 그 자체로 재밌고 발전하는 모습이 뿌듯해요. 


 요즘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SNS 문화에도 꽤나 큰 영향을 준 콘텐츠 중 하나가 춤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처럼 2~30초가량 되는 춤을 추고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에서도 같이 즐길 수 있어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성의 사회였는데, 이제 개성의 사회로 바뀌었잖아요? 이제 우리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만이 아닌 재밌고 시선을 끌 만하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강습 후기

 춤은 배워보고 싶고, 어중간한 나이의 남성이 혼자 춤학원에 등록하긴 너무 눈치 보여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제가 사는 지역 체육센터에서 방송댄스 수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돼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성비

 들뜬 마음으로 수업에 갔는데, 시작부터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고 말았어요. 35명 정원인 반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게 웬걸. 남자가 둘 뿐이었습니다. 수업 10분 전에 수업하는 곳에 갔는데 거의 20명 넘게 여자밖에 없길래 선생님께 물어보니, "원래 여자 비율이 매우 높다. 그래서 여자 춤밖에 안 가르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현기증이 나서 당장 나가고 싶었는데, 내향인들에게는 그 상황에서 뒤돌아 나가는 것도 굉장한 부담이라 빠져나오지 못하고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없다"라고 계속 되뇌이면서 들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

 결과는 그야말로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초보반이라 진도도 느리고 결과물도 멋스럽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재미있었습니다. 동경의 대상이던, 콘텐츠로만 즐기던 문화에 풍덩 빠져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니까요. 


 그때 눈 질끈 감고 뒤돌아 나갔더라면 아마 이런 감정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스스로를 잘했다고 용기 있다고 토닥이고 있을지도 몰라요. 해보니 그냥 몸을 많이 쓰는 운동 중 하나이고 못해도 어차피 다 같이 못하기 때문에 가장 큰 걱정이었던 부끄러움도 없어졌거요.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수업도 나가고 따로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도 하면서 첫 번째 안무 1절을 온전히 제 힘으로 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힘들 만큼 안쓰럽긴 한데 하하.. 기분 엄청 좋았어요. 


오히려 내향인을 위한

 여담인데, 춤은 오히려 내향인에게 최적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연습실을 빌리던 집에서 침대 밀어놓고 하던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최근에 클라이밍을 하러 갔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고 다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라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저 5평 남짓한 공간은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나는 눈치 볼 일 없는 즐거운 곳이에요. 클라이밍장을 생각하면 쾌적 그 자체 아닐까요?









만학도의 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에요. 모든 일에는 분명히 적당한 때라는 게 있는데 이게 지나거나 이른 시기에 시작하면 적당한 때에 시작한 사람들보다 더 큰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정신적인 괴로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제라도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못다 한 일들도 서둘러 시작할 생각이랍니다.


육체적 어려움

 춤을 따라 함에 있어 어려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제 영상을 보고 있자면 웃음도 안 나와요. 너무 못해서. 남들은 하나씩 동작을 배우고 바로바로 따라 하는 것 같은데 저는 배울 땐 못하고 집 와서 복습을 해야 겨우 따라가는 정도니까요. 


 춤에 기본기라면 박자감각, 여러 잡기술들(웨이브?, 아이솔레이션?) 등이 있겠는데 다행히 제가 노래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박치는 아니어서 박자감각은 문제없었어요. 하지만 여러 잡기술들이나 스텝 밟는 게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이제 2달 차에 접어들었는데, 아직까지도 잘 못하는 게 짝다리 짚는 거예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여자 아이돌 춤을 하다 보니 짝다리 짚으면서 포즈를 취하는 동작이 꽤 많은데 이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정신적 어려움

 이건 사실 눈치 많이 보는 성격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남들 신경 쓰지 말고 나 할 것만 잘하면 이런 걱정 없을지도 몰라요. 그냥 나는 해도 잘 안되니까, 남들은 잘하는 것 같으니까, 아이돌들은 이것까지 신경 써서 하는데 나는 따라 하기 급급하네? 이런 생각들이 다 너무 늦게 시작했고, 나 같은 내향인들은 하면 안 되는 운동인가 보다 싶기도 하고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들이죠. 


 쓸데없는 고민인 만큼 할 필요도 없는 생각들인데,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정신적 어려움이 함께 따라와서 괴롭히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지금 강습받는 곳 말고 다른 학원도 가볼 생각인데(여자춤보단 남자 아이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그때는 또다시 처음처럼 나이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이것도 쓸데없는 생각인데ㅋㅋ!)


내 취미가 될까?

아마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오랜만에 찾은 재미있는 취미인데 1~2달 하다 버릴 순 없죠. 돈도 적게 들고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어요. 감사하게도 K-Pop 열풍이 아직도 강풍이라 유튜브에 보고 즐길 콘텐츠도 넘쳐나서 그 재미가 두 배에요.


 스스로의 의지로 복습을 하고, 연습실을 빌려서 부족한 부분을 또 연습하는 제 모습이 너무 새롭습니다. 2달 차 만학도라 아직 두렵지만 갈 길이 먼 만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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