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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Dec 12. 2021

블록체인과 디지털 아고라,  정치의 미래

정치는 한번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정치는 물리적인 한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던 때를 상상해봅시다. 문제가 생기거나 서로 규칙을 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을 땐 다 같이 모여 간단한 의사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사소통 공간을 흔히 아고라(Agora)라고 부릅니다. 아고라는 사전적으로 광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현안에 대한 연설을 듣거나 이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아마 이때까지는 각 소집단만의 아고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단이 커지면서 작은 집단에서는 발생하지 않던 문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문제의 수준 또한 깊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이제 다 같이 모여 생각을 충분히 공유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설사 자리를 마련하여 모인다 해도 모든 이의 의견을 하나하나 들어줄 수 없었고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그 곳에 모인 전부라면 이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할 것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정치인입니다. 시민들이 뽑은, 철인으로 대표되는 집단에 문제 결정의 권한을 대부분 이임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정신적 지지와 물질적 지원을 해줬던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정치인이라는 개념이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현대의 정치형태가 출범한지 몇백 년도 아니고 몇천 년이 흘렀죠. 이제 인간들은 의사소통에 있어 시공간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거엔 집단의 크기를 물리적으로만 젤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가거나 편지를 보내서 겨우 소통하거나 한 번에 한 명하고만 통화가 되던 시기 등을 생각해 봅시다.


 하지만 이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 공간에 있어도 몇천, 몇만 명이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집단의 크기는 더 이상 물리적인 크기로만 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5천만 인구에게 모두 의견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도 정치구조가 100년 전, 200년 전과 같다는 것은 세상에 발맞추어 나가지 못한다는 뜻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가 부족했음을 자각해야 하고 300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생각으로 5000만 인구를 대변할 규제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이미 고개를 절레절레 짓게 할 만한 악법들이 많았으니 이제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직접 국가를 관통하는 굵직한 결정들을 내릴 때가 된 것입니다.


� 정치 2.0에 대리인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 2.0, 디지털화(Digital Transformation)된 정치에는 대리인(의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정치에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더 옳은 결정을 내려줄 것 같아서? 아니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 줄 것 같아서? 그런 건 결정하는 사람이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판단은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방법이다" 라던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던가 하는 의견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표가 명확하더라도 그 집단의 구성원이 찬성한다면 진행시켜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전 국민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정치인은 결정 대리인의 명목으로 존재하면 안 되며 결정 보조인의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이제 더 나은 정책과 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에 제공하고, 유권자들은 이 데이터를 보고 해당 사항에 대한 판단을 내린 후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할 순 있어도 특정 정책이나 사람에게 유도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화된 템플릿에 제공되어야 할 것입니다.

⛓️ 블록체인의 등장

 정치에 있어서 디지털화의 취약점은 투명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득이 되지 않는 정보를 숨기고 삭제하며, 득이 되는 정보는 높은 빈도로 노출시키는 등의 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리 처벌 수위를 높여도 세상에 존재하는 힘의 논리 앞에 무결성이 깨질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블록체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어떤 기업이나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리하는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합니다. 집단의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체인의 데이터 일부를 바꾸려면 모든 참여자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대한 데이터 체인에 어떤 데이터를 올리는 행위 또한 모두가 알 수 있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됩니다.


 국가가 공인하거나 집단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공신력을 갖춘 기관이 블록체인을 관리하고, 참여자는 이 체인에서 실시간으로 국가의 앞날을 책임질 법률이나 결정 등의 의결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표의 디지털화

 투표에 디지털화가 적용된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요? 투표뿐만 아니라 범국가적 의사결정 모델을 상정하고 이를 우리가 겪어본 적 있는, 투표라는 대표 개념에 투영하여 생각해 봅시다.


기본적으로 투표의 모델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이 있어요.   

보통 선거 : 신분이나 종교, 재산 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나이만 지나면 모든 유권자가 동등이 1표를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평등 선거 : 1인에게는 1표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자산 가치가 100억 이상인 사람은 사회적 영향력이 높으니 2표를 주고,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에게도 2표씩 준다면 형평성이 어긋나겠지요.

직접 선거 : 본인이 직접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원칙입니다. 대리인이 뽑을 수 없습니다.

비밀 선거 : 내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어떤 정책에 동의했는지 본인 이외에는 알 수 없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아직 기술적 한계로 현존할 수 없지만, 이 네 가지 원칙이 보장되는 디지털 아고라가 만들어진다면 정치 2.0의 바람이 강하게 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투표 말고도 정책 제언, 이슈에 대한 토론, 자유로운 토의, 선호도 조사와 같은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더 경제적이고 빠르며 합리적인 의사결정 수단으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화된 의사결정 방법의 필요성

 대국민 투표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국가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시행합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같은 대형 이슈에 대해 진행하죠. 이런 투표인 만큼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국가지표체계에서 제공하는 투표율입니다. 점점 오르고는 있지만 아직 60~70% 정도입니다. 무효표도 존중한다만,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율이 이 정도입니다.

 이 투표율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나올까요? 국가는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가장 가까운 투표 장소를 걸어갈 수 있을만큼 많이 만들어 참여를 독려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5명 중 1명은 투표를 안 합니다. 원인이 뭘까요?


 제 생각엔 기회비용이 낮아서입니다. 그리고 아직 불편해서입니다. 투표하러 가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일이 있어 그걸 하러 가는 사람, 투표하러 가는 것 자체가 싫은 사람, 가서 기다리는 게 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 중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표율이 100%에 수렴한다는 뜻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들이 투표라는 행위가 가지는 중요도를 인식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그에 준하는 시민의식을 달성한 사회를 뜻합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가 달성되었다는 가정 하에, 현실적으로 투표가 가능한 환경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80%에 달하는 투표율은 초등교육 기관부터의 이어진 지속적인 교육과 참여 여건 개선이 큰 몫을 했다고 보입니다. 허나 현실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표날에도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영업자들이나 생계곤란 가정, 장애인과 같이 명목상 제도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투표날은 그저 일하는 날이나 쉬는 날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투표에 디지털화는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 더 나아가 사소한 결정에도 쉽게 내 한표를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한계

하지만 디지털 아고라가 그렇게 좋은 개념이라면 이미 보급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도입니다.

이 시스템이 정형화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첫번째는 스마트 기기 보급률입니다.

 앱으로 만든다면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이나 스마트폰 활용도가 낮은 사람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웹으로 구현하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곳에 살거나 웹 브라우져를 켤 수 없는 사람에게는 보통선거의 원칙이 깨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특별한 보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딱히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투표하지 않는다 한들 이 정책의 도입이나 특정 단체의 장이 바뀔 확률은 적으니 말입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더 나은 집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에게 투표권 이외의 작은 이익을 부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투표의 원칙이나 제안 절차가 구현되지 못해서입니다.

 기술적 이슈와 법률적 이슈가 동시에 고려된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헌법에서 요구하는 4대 선거 원칙을 적용하려면 기술적 한계가 있습니다. 비밀선거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투표중인 내 스마트 기기를 나 이외에 누구도 볼 수 없어야 하며 직접선거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본인 이외의 누구도 내 기기로 투표해선 안됩니다.

하지만 이는 아직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습니다.

대국민 투표같이 크고 중요한 투표만 오프라인으로 하자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스템이 정형화되려면 아무리 작은 집단에서 사소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모든 원칙이 구현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보안의 이슈입니다.

세 번째 이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강력한 암호화 알고리즘이 적용되었다고 한들, 투표하는 기기를 빼앗기거나 투표 요청을 가로채서 조작하는 경우 등등 보안의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이 의사결정 수단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단 1건의 오작동도 용납될 수 없는, 보안의 측면에서 무결한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아직 그걸 보장할만한 보안 정책이나 보안 기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스템들 중 디지털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스템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조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 개념이 그저 편리의 측면에서 조금 감내할만한 수준이라면 조금 늦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사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인원 임명 등의 사안은 단 300명의 의원의 투표로 결정되어선 안되고 국민 모두가 참여하여 결정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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