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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Dec 10. 2021

오늘도 웃어드렸다.

내 비싼 웃음

 장교시절 모셨던 대대장님 중에서 이런 말을 해주신 분이 있다. 웃는게 돈드냐고. 좀 웃으라고. 당시는 직속 지휘관이기도 했고, 듣고보니 틀린말도 아니네 하고 넘어갔는데 조금 더 살아보니 그건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소싯적 생각은 안하고 오늘의 위치만 생각하는 사람의 헛소리였다.


 누구에게나 웃음은 비싸다. 물론 1회당 100원이라던지 laugh는 2배, smile은 1.5배로 주는 식이 아니다. 그 대대장님은 이런 논리로 접근했겠지. 나는 웃음에도 생체에너지 이외에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이 의견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되이려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도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웃음으로써 공감과 소통, 슬픔까지도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사람과도 적당한 웃음량을 유지하는게 불편한 사람이 있다. 이 알량한 차이를 두고 내향적이니 외향적이니 왈가왈부하며 사람을 판가름하는 족속들이 있지만 그냥 간단하게, 나는 딱히 웃고싶지 않다. 그냥 그 뿐이고 만약 웃을일이 생기면 내딴에서 적당히 웃음짓고 말겠지만 그런 점들이 남들로 하여금 안좋은 인상을 준다던가 사회성과 같은 내 속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린다면 나는 억지웃음을 짓느라 스트레스를 배로 받는 아이러니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가짜 웃음을 짓고 왔다. 심지어 내가 모은 팀의 팀장으로 있는 모임에 나가서 말이다. 당장이라도 내보내고 싶은 팀원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고, 더딘 진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웃음에 같이 웃었으며, 아무런 통보도 없이 늦게 온 팀원에게도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직접적이진 않은 작고 불량한 태도에도 그냥 배시시 웃으며 넘어갈 뿐이다. 


 회사에서도 매일 마찬가지의 생활상이 반복된다. 우리 회사는 아침마다 거의 반 강제적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인사를 종용하는데,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은 매일 대표실에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 다행히도 개발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 해야하는 회사 사정 때문에 이런 문화를 무시하고 다니고 있는데, 만약 나와 같은 소수를 배려하지 않는 이같은 문화가 나에게 강요되면서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사정이라면 아마 예진작 정신과에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이쯤 읽었다면, 소위 인싸라고 불리우는 집단이나 옛 기억이 희미해진 사람들은 그저 불평불만 많고 사회생활 부적응자가 떠들어대는 시시껄렁한 툴툴거림이라고 치부할 지 모르겠다.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나도 저 편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거짓 웃음을 강요받는 세상은 한 발 더 나아가, 결국 멀티 페르소나라는 끔찍한 내부분열을 만들어냈다. 우린 이제 더이상 온라인 상에서 아이디 여러개로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는 수준을 벗어나, 오프라인 세상에서도 다양한 가면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이던가, 구밀복검이라는 성어를 배운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옛날옛적 권력자는 암살자가 돌아다녀 무서워 밤에 잠을 못자던 시적에나 유효할 법 하다고 생각했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배에는 칼을 숨긴다라. 근데 꼭 입에 꿀을 바르지 않아도, 배에 칼을 숨기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로 오늘날에 흔히 볼 수 있는 행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꿀은 바로 웃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가짜 웃음이겠지. 이런 종류의 웃음은 굉장히 무섭다. 마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대장님은 우리 부대원 모두에게 꿀을 입에 바르길 원하셨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짜 꿀을 바르고 수백자루의 칼이 항상 지휘관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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