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ay Be Wrong
스님이 쓴 글이나 책을 읽을 때면 비슷하게 느껴지는 감상이 있습니다. 그 특유의 초연하고 묵직한 톤의 문체로 하염없이 깊은 통찰이 보이곤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도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완벽해 보이는 스님들도 우리와 비슷한 걸 느끼고, 감정도 풍부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 대목은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도 잘 느껴져요. 뭐 겉으로는 깊은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 초연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속으로는 졸려서 말씀은 귀에 안 들어오고, 마냥 잘 내린 커피냄새에 온 집중을 다 쏟고 있기도 한다고 하니까요. 이런 피상적인 측면이 아닌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과거에 했던 잘못된 생각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스님이 되실 수 있나요?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는 점과 같은 현실적인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요. 내가 물질적으로든, 명망이나 지위로든 가진 게 많다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로 세계적인 회사에서 어린 나이에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봤던 인물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당연히 풍족했겠지요.
책에는 빠르게 전개되어 그 생각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아마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귀의할 생각까지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많은걸 내려놓고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계획, 통제, 조직... 우리는 왜 그렇게 미래에 집착할까요. 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가 무서워서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거든요. 예전에 돈이 너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진절머리 나서 이제는 예비비의 예비비까지 벌어두는 사람이 되었어요.
하지만 불안을 해소하고자 만든 계획들과 통제책들은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해요. 계획대로 돼도 다음 상황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고, 안되면 안 되었을 때의 계획이 필요하니까요. 통제란 또 얼마나 불편한가요. 사람 마음이 어디 계산기처럼 항상 같은 입력에 같은 출력을 내놓나요.
현실에 충실합시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서핑 해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격언이라며 이런 말을 해주십니다.
같은 파도는 오지 않는다.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데, 그중 단 하나도 같은 파도는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파도에 가장 알맞은 행동을 통해 이겨내는 방법뿐이지요.
작가는 평생을 수양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살았지만 종단에는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립니다. 나쁜 짓도 안 하고 몸을 혹사시킨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을 수도자로 살았는데, 불치병이라뇨. 하지만 스님이시니까 죽음 앞에 초연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슬픔이 밀려오고, 펑펑 울기도 하고, 남게 될 사람들을 걱정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러다 인생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고야 비로소 초연해집니다. 지금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초연함을 다루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의 상황이 그에 버금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죽음 앞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고, 어제 잃어버린 돈 만원에 스스로에 대한 악감정이 솟아오를 있습니다. 나 스스로와의 갈등일 수도, 남과의 갈등일 수도 있을 때 우리는 한번쯤 마법의 주문 "I may be wrong(나도 틀릴 수 있습니다)"를 외쳐보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같은 곳으로 갑니다. 모두가 같은 곳에서 왔듯이요. 이 책에서 여러 스님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 스님이 꽤나 인상적이었어요.
내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레드 제플린의 신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흥에 겨운 채 시원한 밤공기 속으로 나서는 기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끝나고, 그 열기를 뒤로하고 나올 때의 그 시원한 밤공기를 느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하실 거예요. 저는 여한 없이 놀고 간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공간을 통해 표출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죽음 앞에서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면 좋겠다고 표현하신 거죠.
그러면 더 이상 두려워할게 아니게 됩니다.
누구나 수도자의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초반에도 언급했지만, 당장의 모든 걸 다 버리고 절에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그들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우리가 겪는 작은 일들에 적용하며 그 마음을 배워나갈 순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