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에 꿀 한 스푼을 풀어냅니다. 달큼한 향기를 맡다 보면 침이 고입니다. 그리곤 커튼을 젖혀 아침의 쨍한 공기를 눈으로 담습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코에 얼굴을 맞대어 숨소리를 듣고, 읽었던 책을 꺼내 좋은 글귀를 노트에 끄적여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벅차올라 입안에 꿀물이 더 달게 느껴집니다.
아침이 가진 힘은 참 대단합니다. 밤공기의 들숨과 함께 들어왔던 센티한 기분들도 흩어져 버립니다. 어제까지도 모든 걸 망쳐서 두려워하고, 도망가고 싶어 지던 사람들도 아침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밤새 신음하던 암 병동의 환자들도 동이 트기 시작하면 고통이 잠잠해져 비로소 눈을 붙이게 됩니다.
이런 아침이 너무 소중해서, 감사해서,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서 글을 씁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면 86 병동, 제일 끝자리 침대에서 글을 쓰던 내 동생도 떠올려봅니다. 암세포가 뇌까지 퍼져, 왼쪽 눈은 보이지도 않는 상태였지만 동생은 멈추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아픈데 좀 쉬어야지, 자꾸 그렇게 노트북 하면 전자파 때문에 좋지 않아”라고 말하면,
“이것만 쓰고, 이것만 쓰고...”
밤새 아파서 짜증을 내던 동생이 아침에는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과 감정을 적는다는 것이, 고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와 치유라는 것을요.
글쓰기가 갖는 진정한 가치와 힘을 내 동생을 통해 깨달았는데... 참 어리석게도 동생이 하늘로 떠나고 나서 알아버렸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매일 그렇게 뭔가를 쓰다니 너 정말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해주는 거였는데...
소중한 사람을 추억하고 싶어서, 지금의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서, 저녁 하늘 사이에 떠 있는 푸근한 공기를 담아두고 싶어 글을 씁니다.
달콤한 꿀물 한잔과 노트북을 앞에 두고 오늘은 동생이 즐겨 읽고 필사하던 문구를 하나 적어봅니다.
<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하고 물으면,
안녕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
- 김애란 '달려라, 아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