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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은통한다 Jan 10. 2021

TOMORROW


한 남자가 있었다. 예민하면서도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잘하고픈 욕심은 많았으나, 뭐 하나 잘하는 재주가 없던... 그는 청소년기를 방황의 시기로 보냈다. 그런데 대충 치렀다는 수능에서 평소보다 100점 이상 높은 점수가 나왔다.  알고보면 명석했던 그였다.  그러나 가정 상황을 고려해 인서울 대신 지역에 있는 대학을 선택했지만 결국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자꾸만 자신감을 잃어갔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시간이었다.  


도망칠 곳이 필요했던 그는,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대 생활은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이는 동기들을 통해 자존감을 찾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반 육군이 아닌, 최전방 ‘GP 특수 수색대원’으로 뽑히게 됐는데,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부대가 아니라고 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후로 그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갔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로 용돈도 벌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진로도 개척했다. 졸업과 동시에 대형 대학병원에 취업을 했고, 2년 뒤 서울에 있는 유명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이직했다. 그런 와중에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 의료법학과에 합격했고, ‘의학 기자’로도 활동하며 가족들의 자랑이 됐다.   

그의 아버지는 이제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보상을 받은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아버지! 제가 박사까지 따서 최종 목표인 교수에 도전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아버지는 교수가 된 아들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하셨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일까. 성공의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던 그의 앞길에 제동이 걸렸다.

2016년의 어느 봄날, 양치를 하고 있던 세면대 위로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입 안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커다란 점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가슴에 자꾸 작은 상처가 났다가 다시 딱지가 생기는 과정이 반복됐다.

뭔가 불길했고... 결국 ‘악성 흑색종 3기’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점에서 생기는 희귀한 암을 수술하기 위해 내분비내과, 종양내과, 피부과의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7시간에 걸친 대수술... 10번의 방사선 치료, 수차례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주렁주렁 침대에 매달린 약들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일은 그 남자가 하늘로 떠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그를 생각할 때면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실감된다. 건강했고,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이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곱씹으면 기가 막히고 원통하지만, 비가 내리면 새순이 싹트고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자연의 섭리겠지......
 
내일 일은 나도, 너도,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에게 많은 추억과 감정을 남기고 떠난 그를 생각하며 다가오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 보다, 오늘의 감사함을 더욱 누려야겠다.  


** 본 글은 지난해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 온라인 모임 때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따라 동생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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