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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은통한다 Jun 11. 2020

한낮의 습격

[엄마, Please!_01]

삐삐삐 삐삐- 덜컥.
오후 2시.
예고도 없이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무거워 죽겠으니까 얼른 와서 이거부터 들어!”

화분 4개를 비롯해 커다란 장바구니를 2개씩이나 들고 친정엄마가 들이닥쳤다. 지난주에도 우리 집에서 3일 주무시고 갔는데, 이번 주엔 또 무슨 일일까. 가져온 짐 보따리 견적을 보니 며칠 있을 기세다.  
 
‘전화라도 좀 하지, 사위가 샤워라도 하고 있었으면 어쩔뻔했어...’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물었다. (우리 신랑은 출퇴근이 불규칙한 직업군이다)

“어쩐 일이야?”

“아~ 시장 지나는데 난에 꽃이 활짝 핀 거야. 니네 집에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몇 개 사 왔지. 그리고 우리 빈이 불고기 해줄 거랑... 니 신랑 잘 때 땀 많아서 여름 베개도 하나 샀어. 아! 그리고 앞치마도. 지금 쓰는 앞치마는 물에 너무 젖더라. 미용실에서 쓰는 이런 비닐 앞치마가 최고니까 이거 써.” 

라고 신나게 말하며 장바구니에서 계속 뭔가를 꺼내는 엄마. 수세미, 치약, 빨래집게 같은 각종 살림살이까지 꺼내 보이며 마치, 착한 일을 한 뒤 칭찬받고 싶은 어린애 마냥 들떠있었다.

우리 집에는 화분이 벌써 여러 개다. 처음 시작 역시 엄마였다. 화분 3개를 우리 집에 그냥 갖다 놓은 것인데, 어떤 바람이 불어서인지 갑자기 신랑도 식물을 키워보자며 여러 개를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식물 키우는데 취미가 없다. 사람 키우는 것도 힘든 지경에, 다른 것을 돌볼 여유도 없거니와 자취 때부터 식물을 집에 들여다 놓는 족족 시들시들거리다 결국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개월 아들내미가 온 집안을 기어 다니며, 아무거나 마구 잡아당기고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화분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었다. 이미 화분 두세 개를 깨 먹었다.

그래도 신랑이 들여온 화분들은 관엽식물이었고
 ‘토분’에 옮겨 심으니 그럭저럭 인테리어 효과까지 있었기에, 물도 주고 햇볕도 적당히 쪼여주면서 나름 정성을 들여 키웠다.

그런데...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화분을 키우면, 본인 취향의 화분을 들이고 싶어 했고, 그릇을 사도 본인이 쓰기 편한 그릇으로, 앞치마도 마찬가지였고 냄비와 프라이팬 위치 등 살림살이를 모두 본인 스타일대로 재배치하셨다.

나름 잘 키우고 있는 우리집 식물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취향에 맞는 그릇으로 주방을 꾸미고 싶었는데, 엄마는 본인이 도자기 공예를 배우러 다닐 때 만든 작품이라며 무작정 그 ‘무겁고 투박한 것’들을 가져오셨다. 딸이 시집갈 때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주는 것이 로망이었단다. 7년 전의 난, ‘엄마의 정성이자 마음이지...’ 하며, 군말 없이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아이 둘을 낳고, 신랑 내조하고 깔끔하게 살림하며 야무지게 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여기는데... 엄마가 변수다.

늘 말은 좋게 한다. ‘너 힘들까 봐... 너는 살림 못하니까...’ 라며 서른 중반을 넘어선 딸을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하는 엄마. 나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런 엄마가 참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며 선반에 올려져 있던 화분들을 밖으로 빼내고 본인이 사 온 것들을 올려놓는다.

엄마 취향.  개업식 느낌~ 겨우 말려서 2개만 놓음;;  혹자는 예쁘다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진빨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이제야 집이 좀 화사하네~~"라며 하이톤으로 외친다.
암행어사 출두할 기세



그리고선, 장바구니에서 잔뜩 사 온 오이를 꺼낸다.

날도 더우니, 오이무침을 해주겠다며-.

“무침 말고, 소박이로 해줘”

난 이렇게 오늘도 ‘엄마가 모르는’ 타협을 한다. 엄마에게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오이소박이는 먹고 싶은 딸. 그렇게 오이에 묻어가는 고춧가루들 사이에 이런 내 마음을 대충 버무려본다.

매콤 짭짤- 야속하게도 맛있는 오이소박이. 꽉 들어차 있는 부추 양념을 들춰보니, 엄마가 뿌린 소금 세례 맞아 축 처진 오이 속이 나를 닮은 듯하다. ‘한낮의 습격’은 이렇게 오이소박이로 마무리됐다는 후문...


오이소박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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