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에세이 작문
교육에서 선생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식 전수의 역할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흔히 지능과 재능으로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닥친 문제에 대한 해결을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고정된 생각을 벗어나게끔 유도해야 하며 학생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실험이 이러한 예를 보여준다. 두 집단의 학생들에게 문제 풀이를 시켜보았는데 가능함을 말해준 집단과 아닌 집단 사이에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끊임없이 가능함을 심어준 집단에서는 문제 풀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뛰어넘는 도전이 이루어졌고 실제로 큰 성과가 나왔다. 반면 아닌 집단의 학생들은 금방 포기해버리기 일쑤였고 성과도 미미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점수를 올려주는 것에 목적을 두어선 곤란하다. 결국 학습을 하는 것은 학생 개개인에게 달려있기에 뚜렷한 목표의식과 할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
한 명의 훌륭한 선생은 보잘것 없는 선생 10명보다 낫다. 선생의 지도는 한 학생의 인생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선생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집단의 소득 분포가 상위에 머물 확률이 더 높으며 더불어 점수가 높은 집단이 나중에 더 큰 소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만큼 선생은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핵심적인 일에 그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고 교사를 하는 이들이 바로 학교 교육을 망치고 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그 자체로 놀라운 공간이다. 이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학습은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촉매제이며 꿈과 목표를 정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한 인생의 전반적인 태도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목표의식을 가지는 것은 학습 태도를 결정짓는다.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에 더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학교가 가진 문제점은 통계와 수치에 기반한 평균적인 점수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점수를 가지고 각 개인들의 학습이나 인간적인 대우를 차등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한 학생은 스스로를 낙인찍어 트라우마를 오래 남길 여지가 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며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 더 창의적이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 충분히 바뀔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선 안 된다. 교실은 경쟁의 공간이어서도 안된다. 다윈의 약육강식, 적자생존 이론은 교실 환경에 절대 맞지 않는다. 전교 일등을 못한다고 누군가 죽이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라는 말에 우리는 고개를 젓지 않는다. 결코 싸구려 클리셰가 아니다. 이는 교육에도 적용된다. 경쟁은 오히려 교육에서 낭패를 낳는다. 학습에서도 스스로와의 싸움이어야지 옆 사람과의 경쟁이어서 안 된다. 우리는 소득으로 사람마다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소득이 높다고 사람 가치가 정해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시험 점수도 이와 같다. 점수는 오직 학습의 척도여야만 한다.
고등학교는 대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이지만 대학에 가지 않는 결정을 내린 이들도 충분히 진학의 여지를 남길 수 있게끔 선생들은 그런 학생들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늦깎이 대학생들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누가 이런 사람을 비난하는가? 학창시절엔 공부를 싫어했지만 뒤늦게 목표가 생겨서 대학 진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낙인으로 인해 반항심으로 공부를 포기한 경우도 있고 교실에서 배우는 게 재미없어서 공부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공부를 하기에 늦었다. 공부를 하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이런 건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아마 이런 생각을 심어주는 것도 선생들일 가능성이 크다. 시기적절한 때가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길이 있으며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주입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발상이란 걸 우리는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된다. 우리는 인생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 않는가. 교육은 평생 동안 이루어진다.
중등교육과정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학교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은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기회를 준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공부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결국, 교육이 남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이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