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을 쫓는 것이 비단 몸매 뿐일까
섭식장애가 사회문화적인 원인에서 기인한 것은 분명하다.
여성의 미의 기준이 혹독하고, 다른 어떤 능력보다 외모가 가장 평가의 우선순위에 있기도 하다.
능력있는 여성도, 외모가 부족하면 예쁘고 능력이 조금 부족한 이에게 밀려난다.
비현실적인 몸매를 아름답다고 신봉하고, 가학적인 식단과 운동을 해야 잠시 만들어낼 수 있는 몸을 마치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노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식문제를 사회적인 탓으로만 돌렸을 때 기인하는 문제는 개인이 감당해야만 한다.
섭식문제가 사회로 인해 생겨났다고 단정지어버린다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나의 병은 영원히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인식과 구조를 바꾸려고 개인들이 투쟁한들 얼마나 걸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으려면, 섭식장애는 사회가 바뀌기 전에는 낫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내 논리의 오류에 빠져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셈이다.
섭식장애란 (호르몬 기제도 작용하지만) 결국 시작과 유지는 스스로 하는 행위에 가까우므로, 원인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믿는 한 스스로 그 행위를 계속하게 되기 마련이다.
분명히 사회문화적 요인이 존재하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원인에 집중해야만 한다.
섭식장애의 원인은 다양하다.
사회적 문제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사실은, 오히려,
섭식문제를 겪는 이들의 대부분은 섭식장애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보다 먹는 것을 참지 못하는, 다이어트 하나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더 크다. 그것이 섭식장애가 보이는 가장 큰 특성이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도 않고, 외부의 도움을 통해 치료받기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버티다가 어떻게 노력을 해도 완치가 되지 않으면 사회와 외부로 원인을 돌리고 원망하기에 이른다. 나는 절대로 앞으로도 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사회가 변하지 않으니 당연한 거라고.
못난 나만의 잘못도, 문화적인 압박만의 이유도, 유년기에 잘못 형성된 자아개념과 인식만도 아닌,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그렇기에 그 중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사회에게 충분히 화내고, 분노하고, 감정을 표현한 후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나를 보살피는 걸음을 하나하나 떼보았으면 좋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자책은 그만두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충분히 겪어보기를. 먼저 그 길을 밟아 온 이의 마음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