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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베어 이소연 Sep 09. 2024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에요, 몸이 문제지

두고 봐, 살만 빼면 다 해결됨


살만 빼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내 불행은 뱃살 때문이야



대부분은 마음이 아니라 몸을 탓한다. 내 강박적 다이어트는 퉁퉁하고 굵직한 몸 때문이라고.


다이어트 전문가를 3-4년 찾아다니고, 그럴수록 더욱 깊어지는 식이문제의 어두운 골방에 갇혀 있다 보면 '마음이 문제인가'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상담사에게 찾아왔을 때에는 몸을 고쳐달라고 한다. 날씬하게. 몸을 마음에 맞추기 바란다. 그러니 상담이 유지될 리가 없다. 심리상담사들은 마음을 고치는 사람이니까.





음식=행복


우리가 이토록 음식에 매달리고, 벗어나지 못하고 휘둘리는 이유는 결국 음식이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요소이기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에서는 오랜 연구 끝에
행복의 정의를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행복을 잡으려고 그토록 행복의 표상인 음식을 욱여넣어도 정작 나는 행복해지지 않고, 불행만 가중된다. 그러니까 몸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결국 행복을 갖고 싶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을 사람들은 어려워한다. 돈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고, 마른 몸, 예쁜 옷, 좋은 집, 좋은 차를 갖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한다.


왜 마른 몸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지는 거식증에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투쟁 끝에 결국 마른 몸을 얻는다. 하지만 적당히 마른 몸에 만족하지 못한다. 더더, 더욱더 뼈가 앙상해지는 것을 바란다. 


목표했던 마른 몸을 얻어도 상상했던 것처럼 행복과 만족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식을 계속하면 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인지기능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여태 해왔던 관성대로 살을 계속 빼고자 한다. 오랫동안, 그들의 머릿속에는 '살을 빼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신념이 강박적으로 있어왔고, 뇌 기능이 떨어지므로 오로지 그 신념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살 빼면 달라질 줄 알았지

최강 외향형인 어느 남자 카페사장님이 끝내주는 마케팅 수완으로 SNS에서 꽤 알려졌다. 원래 타고나길 통통한 체형이었던 그는 더욱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독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20kg를 감량했다. 그러고 나서 후기를 남겼다.



다이어트를 하면 정우성이 될 줄 알았죠...
살을 뺐는데 여전히 거울 속에는 제가 있더라고요.?
타고난 돼지상은 어떻게 해도 그냥 돼아지... 하하하.....
 

그는 다시 원래 체형으로 돌아갔다. 슬프게도, 긁지 않은 복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가짐에 있다. 그에게는 잘난 외모보다 더 강력한 긍정마인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혹독한 다이어트와 실망스러운 결과조차도 유머로 승화해 마케팅 수단으로 써먹었다.


그토록 지독하고 고통스러웠던 20kg의 다이어트도 웃음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으며, 이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면서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단단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외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충분히 활용해 사업적인 성공으로까지 이끌었다. 여전히 승승장구인 그의 사업의 저력은 마인드가 팔 할일 것이다.






그럼 살 빼지 말고 마음수련만 하는 게 맞는데 왜 고민베어는 체중감량을 언급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베어에서는 체중감량이 가능하도록 식단제안을 하고, 루틴을 잡아주기도 한다. 사실 말의 순서가 바뀐 것뿐이다. ‘체중감량을 위한 식단관리’가 아니라, ‘식단관리로 인해 부가적으로 일어나는 체중감량’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일차적으로는 건강을 회복해야 마음이 함께 회복되기에 올바른 식단관리를 하도록 돕는 것이고, 체중감량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체중감량 과정을 관찰해 본 경험은 내 삶의 모든 사건들을 객관화하고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딱히 이유 없이 우울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도 그보다 나아 보이는 남들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는 삶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수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잘 먹기’가 곧 ‘잘 사는 삶’

먹방이 유행하면서 ‘잘 먹는 것’이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을 먹는 것이 되었다. 온 국민이 먹는 것에 매달린다. 한 끼라도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이고 맛있는 끼니로 채우지 못하면 억울해한다. 중독이다. 화학물질 중독, 도파민 중독.


다른 한쪽에서는 몸짱 방송을 하며 극단적인 다이어트식, 닭고야만 줄곧 마셔댄다. 살 빼려면 닭가슴살만 먹으란다. 그러면서 먹방을 본다. 억누르고 참으면서 한 번씩 폭발한다.


중간이 없다.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인내하며 평온하게 중도를 지키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뭐든 극단적이다. 먹는 것은 모든 행동과 삶의 기본이 된다. 먹는 것이 극단적이면 감정도, 판단도, 삶도 모든 것이 극단적이 된다.


중도를 지키도록,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일깨우는 것이 원래는 종교가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학문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시대가 되었다. 심리학이 그중 한 역할을 해나가는 중이다. 


고민베어는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보다,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닿고자 한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가장 껍데기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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