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번 케이스는 가장 교과서적이고도 드라마틱하게 개선된 경우다. 섭식장애가 왜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지, 왜 정신질환으로 진단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10년 동안 절식과 폭식을 반복해왔어요.
이제 제발 좀 그만하고 싶어요.
사주팔자라는 것이 존재하고, 사주를 미신이라고 하기에는 엄연히 명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며, 통계자료도 존재한다. 그 사주팔자에 들어가 있는 것 중 하나가 체질과 체형이다. 골격과 덩치가 크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작거나 가느다란 체형을 타고난 이들도 있다. 만일 이 타고난 체형을 거스르고 지나치게 마른 상태를 유지하거나 지나치게 비만인 상태로 있으면 몸 또는 마음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사주명리학을 추가적으로 공부를 해보려고 하다가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추후에 별도의 주제로 풀어보아야겠다.
여하튼 남들에게는 문제없는 몸무게가 나에게는 이상상태일 수도 있고, 몸무게는 분명히 정상인데 생리불순이나 영양실조,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이유가 각자의 체질과 정상 몸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은 49kg로 잘 살아도 나에게는 그 몸무게가 기아상태일 수 있다. 나의 타고난 체형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다이어트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는 자기 수용의 첫 단추가 되기도 한다. 부정해왔던 내 몸과, 성격과, 능력과 타고난 환경까지도 모두 수용할 때 비로소 자신을 제대로 '사용'하여 살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의 연속상에서 뿌리깊은 정서적인 문제들이 해결된다. 이 사례의 경우 자기 수용에 따른 스트레스 요소와 정서적인 문제들을 10년에 걸쳐 모두 정리해왔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개선이 되었다.
고민베어에서는 첫 주에 문제탐색을 위해 심리검사를 통해 식단을 평소 그대로 관찰한다. 아래 표는 관찰기간의 식단이다.
아주 깔끔하다. 두 번의 폭토 빼고는. 식단도 건강하다.
한 눈에 보아도 크게 손 댈 것이 없다. 하지만 앞선 두 사례는 구토증상이 없는 일반 다이어트 강박의 사례였고, 이 사례는 10년 간 유지해 온 구토증상이 있었다. 그러므로 당사자는 정작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담자의 시각으로는 정서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었고,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도 모두 스스로 제거하여 정리를 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문제는 뭐였을까?
추가적으로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있던 루틴도 문제였다. 이는 언급하자마자 개선이 되어서 3일 차부터는 아침식사를 한 것이 보인다. 실행력과 의지력도 좋은 케이스이다. 습관성으로 남아있던 것은,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상담자라는 개입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상담을 통해 차근차근 대안을 만들어갔다.
아래는 100일간의 기록을 그래프로 나타낸 모습이다. 폭식인 빨간 체크가 30일 이후로 사라지고, 총섭취량을 나타내는 하늘색 선이 아래로 내려가 섭취량이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상담을 통해 몸무게에 대한 인식변화, 스트레스 해소 수단의 변화, 그리고 인생의 목표설계 등 '사고방식'을 바꾸는 기간이 짧았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주변에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자원이었다.
상담사가 제안하는 지침들을 빠르게 수용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침식사 권유를 시작으로, 스트레스 대처 방식 시행해 보기, 업무량 및 활동량 줄이기, 나트륨 및 국물 섭취 줄이기 등 그때 그때 필요한 지침들을 적절하게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겼다.
원래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호르몬 수치가 빠르게 정상화되었다. 가공식품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이미 그것에 중독이 되어서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결국 같다. '생각의 변화'다. 섭식장애를 인지적인 접근으로 개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인지구조를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지만 인지의 변화가 한 달 만에 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미리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다.
상담사가 하는 일은 사실상 방향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변화도, 행동도 내담자들이 만들어간다. 다만 이 분야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고, 사례를 통해 예측도 가능하므로 더 융통성 있게, 시행착오를 줄여가면서 방향제시를 하는 것뿐이다.
내담자들이 얼마나 상담사에 대한 신뢰를 깊이 가지고 제시한 방향성에 따라 잘 따라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부터 착착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따라올 정도라면 사실 심리상담이 없어도 잘 살 사람이다. 상담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준비된 내담자'라고 부른다.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에요, 몸이 문제지
생각의 오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렵다. 나부터도 어렵다. 몸이 문제인 경우도 많으니까. 이놈의 몸, 어떻게 다루어야 마음과 적당히 타협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