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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베어 이소연 Dec 03. 2024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나의 소울푸드

1일1깡 새우깡


어른 둘, 아이 하나가 나란히 발 뻗어 누울 수도 없는 한 평도 안 되는 가게 뒷방.


퍼즐 하듯 요리조리 가로세로로 누워 자다가 네 살배기 여자아이는 일찍 잠에서 깬다. 잠든 엄마아빠 몰래 문을 열고 나가 세발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하나 건너 옆집, 작은 슈퍼마켓 주인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 아이는 세발자전거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새우깡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눈치를 살핀다.


“리나야, 밥 묵었나?”


주인아주머니의  질문에 아이는 도리질을 친다.


“그라면 밥 묵고 까까 묵으야지”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를 가겟방 안으로 밀어 넣는다. 단출한 밥상에는 밥과 김, 김치, 된장찌개가 전부다. 조그맣게 밥에 김을 말아서 입에 넣어준다.


“느그 엄마는?”

“… 자여”


꾸역꾸역 먹기 싫은 밥을 다 받아먹고는 새우깡을 내민다.


“뜯어달라꼬?”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열어 준 새우깡 봉지를 꼬깃꼬깃 손에 쥐어들고 다시 세발자전거에 올라탄다. 주인아주머니는 외상 장부에 새우깡 하나를 달아놓는다. 아침마다 엄마 몰래 집어드는 이백 원짜리 새우깡 하나도, 가난한 집 가계부에 구멍을 내놓는 일임을 그녀도 잘 안다. 하지만 새벽부터 혼자 나돌아 다니는 꼬마 입에 밥까지 넣어줬으니 할 말은 있다.


“아 밥도 안 맥이고 뭐 하나, 느그 엄마도 참. 서울 사람은 아침도 안 묵나“


주인아주머니의 변명 어린 타박을 뒤로하고 아이는 부지런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세상은 궁금한 것, 사고 칠 일 투성이다.


‘뭐 재밌는 일 없나? 또 애들 데리고 연탄이나 부수러 갈까? 어제 옆집 꼬맹이 머리 잘라준 거 재밌었는데. 머리 지저분한 거 잘라줬는데 엄마는 혼만 내고!‘


하루 종일 밥을 대신할 새우깡 한 봉을 싣고 아이는 오늘도 세상탐색에 나선다.






새우깡과 최강 장난꾸러기의 합작, 도파민 파티

짭짤, 고소하고, 파삭파삭한 식감은 도파민을 유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한다. 입으로는 새우깡을 부수고, 코흘리개 남동생들을 데리고 대장질을 하며 작대기로 부수는 연탄은 아마 네 살짜리 뇌에 도파민을 폭발시켰을 테다. 그렇게 얼굴이 새카매질 때까지, 해가 질 때까지 자전거를 끌고 사고 치며 시골 골목을 누볐다.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충만했던 시기 아니었을까. 누구도 막지 못하는 네 살의 무법자.


사는 일이 지치고 힘들면 새우깡이 생각난다. 지금은 연탄을 부수지도, 남의 집 벨을 누르고 도망가지도 못하니 그때 누렸던 새우깡으로나마 도파민을 충족시키고 싶어서이리라.


슬프게도, 반 봉을 채 다 비우지도 못했는데 체기가 올라온다. 미친 듯이 쏘다니며 종일 먹는 새우깡 몇 알과 컴퓨터 앞에 앉아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먹는 새우깡 반 봉이 같을 리가 없다.


어릴 때 배웠던, 그토록 쉽게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먹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배달 오는 바삭바삭 단짠 치킨과 달콤한 디저트는 무법자 시절의 자유를 누리기에 충분하다. 그에 따라오는 묵직한 뱃살도 충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뱃살만 늘어난다면 다시 빼면 되니 괜찮으려만, 문제는 복잡하게 얽히는 호르몬 교란과 대사순환 문제다.



도파민 파티의 슬픈 결말

대기업 제과회사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분이 과자와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하고 계신다. 베이킹파우더에 든 알루미늄, 화학조미료, 향료, 색소, 보존제, 유화제, 방부제 등 독을 먹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담배를 권하라’고 할 정도라고.


그 중독성과, 빼내기 어려운 독소와 염증 덩어리 셀룰라이트를 생각하면 새우깡 몇 알을 집어 들었다가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나의 자유와 통쾌함의 상징인 새우깡이 그리 해로웠다니, 아직도 와닿지는 않는다. 200원으로 채운 염증 덩어리들을 빼내는데 수백만원을 써대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


그 짭조름한 향미증진제와 착착 붙는 지방의 맛은 아니지만, 아이가 먹다 남긴 유기농 새우깡으로나마 마음을 달래 본다. 그나마도 치솟는 혈당을 생각해 내려놓아야 하지만 말이다.


나의 세 살 늦둥이는 유기농 새우깡이 새우깡 맛인줄만 알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가방에서 유기농 새우깡(우리 아이 착한 새우)를 꺼내면 좋아라 달려든다. 아이의 소울푸드는 나보다는 낫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어 추억어린 맛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자신을 해하는 것들이 아니기를. 조금 덜 아프며 살아가기를.





고민베어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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