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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베어 이소연 Nov 14. 2024

엄마께서 끓여주신 된장국

어떡해요 연필맛이나


엄마밥은 맛대가리 없지만

저녁 늦도록 신나게 모기차를 쫓아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알 수 없는 곳이다.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공중전화도 쓸 줄 모르는 여섯 살.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처음 보는 초등학생 오빠가 집이 어디냐고 묻더니 앞장서서 걷는다. 데려다주는 걸까? 따라가도 되는 걸까? 일단 아무도 없고 길도 모르니 따라나선다.


쭐래쭐래 뒤를 따라 어색하게 걷다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다. 입을 헤 벌리고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자니, 초등학생 오빠는 뒤를 쓱 돌아보고 단지 밖으로 뛰어가버린다.


온몸에 소독약을 뒤집어쓴 채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도 가장 작은, 12평 남짓한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따뜻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된장냄새, 참기름에 뭔가를 볶는 냄새가 고소하다. 자초지종을 알 리 없는 엄마가 돌아보며 “밥 먹어!! “한다. 길을 잃었다는 둥, 모기차를 쫓아다녔다는 둥 이야기해 봤자 혼만 날 테니 말없이 식탁에 앉는다.


멀건 국물 한 바가지에 두부와 호박조각 몇 개가 둥둥 떠있다. 국인지 찌개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 휘적거리다 보면 육수를 내고 못 다 건진 멸치대가리도 등장한다. 멸치대가리와 똥을 넣고 오래오래 끓인 찌개는 쓴 맛이 난다. 된장을 만들 때 쓴 간수 안 뺀 소금맛도 한몫 거들었을 테다. 목구멍에 딱 걸려 넘어가지 않는 밥이지만 김치를 쑤셔 넣으면 그런대로 잘 넘어간다. 꾸역꾸역 삼키고 소독약은 씻을 생각도 없이 칠갑을 한 채 침대에 머리를 처박고 잠든다.


‘와, 오늘 진짜 재밌었다. 집까지 혼자 오다니! 내일은 또 어떤 장난을 치러 나갈까?’





어릴 때는 참 먹기 싫었던, 지겹던, 연필 맛이 나던 된장찌개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맛없는 찌개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엄마 품에서 해주는 밥만 마냥 받아먹던 안정감이 그리운 것이다. 엄마와 자그만 집이 세상의 전부였던, 온갖 사고를 치고도 따뜻한 이불속으로 파고들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라질 수 있었던. 그날의 내가.


연필맛이 나도 엄마 밥은 따뜻하고 그립다.

엄마 집밥은 따뜻해야 한다. 유년기의 이십여 년간 하루 세 번 먹으면서 부모의 보호와 안정감, 애정을 흡수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정성과 자식을 위한 노고를 먹고,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가슴에 품으며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의 온전한 가치를 획득한다. 엄마 집밥에서 연필맛이 나도 엄마 밥은 따뜻하고 그립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조건 없는 사랑이기에. 어떤 위협도 없는 안전한 공간이기에. 세상의 호기심 어린것들을 다 쑤셔보고 던져보고 도망쳐 나와 집으로 숨어든다. 그곳에는 따끈따끈한 밥이, 너른 엄마 품이 기다리고 있다.






진수성찬도 끔찍할 수 있다면

아무리 맛있고 진수성찬인 밥상이라도 식사 때마다 찬바람이 휘몰아친다면, 사랑과 인정에 조건이 달린다면 집밥은 두려움이 된다. 집밥에는 엄마의 생각과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


엄마는 오늘도 힘들다. 왜 이렇게 삼시 세 끼를 다 해야 하는지 지긋지긋하고 화가 난다. 쌀을 씻으며 소리를 지르고, 칼질을 하며 짜증을 낸다. 덕분에 엉망진창이 된 부엌을 보니 더 화가 난다. 화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너네는 대체 왜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니!”

“밥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똑바로 앉아서 감사하게 먹지는 못할망정 깨작거리고 있어? “

“맛있다고 그만 말해! 무식해 보여!”


깨작거려도, 맛있다고 신나서 먹어도 엄마의 날카로운 잔소리가 등 뒤에 내리 꽂힌다. 소화가 될 리 없다. 배가 아프다고 배를 움켜쥐고 있자면 짜증 나있던 엄마가 머리끝까지 화를 낸다. 먹여줘도 알아서 소화 하나 못 시킨다고.




도. 망. 치. 고. 싶. 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차려낸 밥상을 목구멍으로 삼켰을 때 그것이 아이에게 힘이 될 수는 없다. 자신 때문에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삶을 사는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모든 것이 자기 탓이 된다. 가난한 집안도, 엄마가 아픈 것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취업이 안 되는 것도, 능력이 없는 것도.


먹는 것이 행복하지 않고, 먹을 자격이 없는 것 같으며, 먹으면서 즐거움을 느껴서도 안될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니까.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니까. 음식에 대한 애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관계다. 그러니 폭식으로 없애버리고 파괴하려고 하거나, 최소한으로 먹으며 식욕을 통제하려고 든다. 먹는 것은 불행하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먹는 것은 행복의 근원이므로.



사랑받거나, 사랑이 없거나

단순히 식욕을, 쾌락을 이기지 못해서 일어나는 폭식과 음식과 오랜 시간 쌓아온 잘못된 관계로 인한 폭식은 다른 문제다. 연필맛이 나도 그리운 것은 힘들고 지칠 때 어린 시절의 안락한 품이 정서적인 지지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고, 정서적 지지자원이 전혀 없어 안전한 공간에 대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면 돌아갈 곳도, 편히 쉴 곳도 없다는 뜻이다. 버티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음식에 기대거나, 관계에 집착하거나, 일 중독이 되거나, 몸을 통제하거나, 게임이나 영상이나 SNS에 중독되거나.


음식이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이유, 반대로 음식이 심리적 고통의 표현이자 원인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어나 눈을 뜨기 전부터 우리는 엄마 젖을 먹는다. 엄마를 마주 보기 전부터 입으로 사랑을 받아 위 속에 채워둔다. 음식은 사랑, 그 자체이며 관계 그 자체다. 그러니 오늘은 엄마에게 찾아가 연필맛나는 된장국을 받아 들고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먹어 보자.

 





맛은 여전히 없을 거다.

괜찮다. 그래도 우리 엄마 밥이니까.

나만 먹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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