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시락과 사춘기 사이-2

독립하고 싶으나 불안한 아이에 관하여

by 고민베어 이소연

무의식을 파고들기 전에


내가 20대 초반에 전공한 심리학은 정서 중심의 정신분석학적 전통이었다. 그 후 행동치료와 인지치료를 모두 경험했고, 지금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코딩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느껴온 것은 무의식을 파고들기 전에, 의식의 자료를 충분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안’이라는 말로 결론내리기 전에, 정서-환경-인지의 상호작용을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락이라는 전략은, 정서적 애착을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는 시도였다.

도시락 하나로 아이의 모든 아토피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아이는 안정감을 회복하고, 나는 과잉보호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함의 인정에서 시작되는 성장


융은 말한다.


"만약에 부모들이 완벽하다면, 그것은 분명 재앙일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도덕적 열등감을 느끼는 외에 다른 대안을 전혀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부자연스런 상처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모의 노력뿐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날 집 안 어른들의 백그라운드를 물어보더니 한탄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 집안은 왜 이렇게 빡세?”


아이는 어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아이에게 공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더라도 사춘기에 아이는 독립을 위한 반항심을 품고, 스스로를 비하해보기도 하고, 부모에게 원망을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내 아이가 느끼는 나의 삶, 나의 감정, 나의 기준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건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기에 더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야.”
“지금 너의 하루하루가, 바로 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어.”




심리를 데이터로, 사랑을 구조로


지금 나는 코딩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상담에서 얻은 사례들을 구조화해가는 중이다.

내 불안을 ‘데이터’로 바꾸는 과정,

내 감정을 ‘안정된 루틴’으로 전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부모로서, 상담자로서의 통합이라고 믿는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심리치료는, 예측 가능한 사랑을 반복해서 전달해주는 것.

그 사랑의 한 형태가 도시락이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방식의 ‘도시락’이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시락과 사춘기 사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