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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무교인의 돌아이썰이랄까

by 고민베어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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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매일 받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들을 매일 돕다보면

내 인생도, 세상도 점점 더 관조적으로 보게 된다.


힘들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도 '이 정도면 감사하고 누리면서 살아야지...'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상대적 비교로부터의 위안이라던가 그런 것이 아니다.


시선이 바뀌었을 뿐.




모든 사람은 태어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겪는다.

경제적인 독립도 있지만, 결국은 정서적인 독립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 또한,

"너랑 나는 같은 영혼이 둘로 태어난 거야"라며

나와 자신을 강력하게 동일시했고,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나에게 투사하는 엄마로부터

완벽한 정서적 독립을 하기까지 많은 공부와 통찰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 어떤 감정을 투사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흔들어봐도 씩 웃고 마는 나를 보며

외롭고 설명하기 어려운 배신감과 불안을 느끼는 엄마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했더니 나이 예순여덟에 진짜 석사를 들어갔다.)






그리고 내담자들의 독립을 끌어내고, 통찰을 끌어내면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결국

신으로부터의 독립, 우주로부터의 독립과 닮아있다는 걸.


그래서 이 우주에서 내가 하나의 존재로,

홀로 바로서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게 보면 부모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이고,

우주를 대신하는 연습장과도 같다.

학대하는 부모든, 가스라이팅하는 부모든 그 관계를 통과하며 우리는

자기 존재를 다시 세우는 법을 배운다.



신은 어떤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주이며, 이 세상이며, 모든 사람이며 결국 나 자신이다.


그 가운데에 신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내가

'내'가 되길,

그래서 더 많은 나로 확장되기를,

그래서 그 확장이 우주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어떤 본질적인 무언가는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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