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날은 케이크가, 어떤 날은 치킨이 땡길까?

그 때 그 때 달라요

by 고민베어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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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케이크만 봐도 정신을 못 차리겠고, 어느 날은 기름 냄새만 맡아도 손가락이 저절로 치킨을 주문하고 있다. 이건 기분에 따라 올라오는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몸 안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시스템의 차이다.그날의 신경계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크가 유독 당기는 날

대개 그런 날은 전날 무리했거나, 혈당이 하루 종일 출렁였거나, 머리를 과하게 쓴 날이다.

불안이 높아지고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뇌는 서둘러 말한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가장 빠르게 흡수되는 당과 지방을 찾게 된다. 케이크, 쿠키, 아이스크림이 갑자기 강하게 끌리는 건, 급박해진 몸이 보내는 신호다. '힘들다'고.



치킨이 미친 듯이 당기는 날

이럴 때는 배가 고프다기보다 마음이 불안정한 쪽에 가깝다. 하루 종일 예민했고, 감정이 흔들렸고, 신경계가 계속 흥분 상태에 놓여 있었던 날. 그러니까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은 날. 이때 뇌는 빠른 에너지보다 천천히 올라오지만 묵직한 안정감을 원한다. 단백질과 지방, 짭짤한 맛이 주는 포만감. 그래서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 같은 단단하고 묵직한 음식으로 향하게 된다.





같은 사람인데 날마다 당기는 음식이 다른 이유는 단순하다. 뇌는 매일 같은 상태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방전된 날과, 정서가 흔들린 날과, 모든 게 귀찮은 날의 신경계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식욕은 늘 심리보다 먼저 몸에서 반응한다. 무엇을 먹고 싶으냐는 질문보다, 지금 내 뇌가 어떤 상태냐는 질문이 훨씬 정확하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걸 의지의 문제로 해석해왔다. 왜 한식 세 끼가 좋다는 걸 알면서도 못 지키냐고, 왜 식단이 이렇게 어려우냐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병원에 가면 늘 같은 말을 듣는다.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잘 자고, 운동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알아서 못 한다’가 아니라,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보상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이 없으면 지속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ADHD 성향이 있는 사람은 더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너무 먼 보상을 목표로 삼는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다이어트 식단을 지키겠다고 하거나, 며칠 동안 극단적인 식단을 버텨보겠다고 한다. 가능해 보여도 오래 가지 않는다. 제한이 심할수록 호르몬도, 심리적인 부분도 함께 터진다.


그래서 필요한 건 결심이 아니라 구조다.

오늘 하루 안에서 도파민이 순환할 수 있는 방식. 세 끼를 먹고도 작은 간식 시간을 허용하거나, 한 시간 집중한 뒤 잠깐 멍을 때리거나, 향이 좋은 차 한 잔으로 리듬을 끊어주는 것. 이런 사소한 보상이 쌓여야 버텨낼 수 있다.


극단적인 식단이 지속 가능한 경우는 그것이 강렬한 직업적인 보상, 사회적인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목숨을 걸고 연예인으로 성공해야겠다는 강렬한 동기가 있는 경우 같은... 때로는 그것이 복수심이 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낮은 자존감에 대한 반동, 혹은 어떤 이에 대한 열망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간지점을 찾지 못하면 거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나는 클린식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님처럼 살라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쾌락이 주어진 이유가 전부 끊으라는 뜻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극단이 아니라 균형이다. 지금 내 몸을 잘 써서 덜 아프고, 덜 지치고, 오래 쓰기 위한 선택들. 그걸 나는 '치트키'로 부르기로 하겠다. 쾌락도 적당히 누리면서, 요령껏 쉽게 살아보자는 얘기다.


편의점과 배달음식이 일상인 세상에서 얼마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아무도 기준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이거다.

감이 아니라 숫자로, 의지가 아니라 구조로, 식욕을 신경계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돕는 것.


식단 이야기는 결국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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