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쉽게 살찌는 이유

물만 먹어도 쪄요

by 고민베어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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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 정신의학과 지나영 교수는 스스로를 ADHD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교수는 자신의 식습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거나 주워 먹고, 퉁퉁 불은 라면을 칼로 썰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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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튜브 다독다독


마치 기안84 같았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 장면은 ADHD의 일상을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무 때나 먹고, 끼니는 흐트러지고, 먹고 나면 바로 살이 붙기 쉬운 구조.


그래서 ADHD에게 식단 관리는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루틴 전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루틴이 무너지면 식사가 무너지고, 식사가 무너지면 삶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장 기능이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기능성 장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해 에너지로 전환하고, 배출까지 원활해야 몸이 균형을 유지하는데, 소화가 잘되지 않고 변비나 복부 불편감이 반복되면 음식은 제대로 쓰이지 못한다. 그 결과는 두 가지 중 하나로 흘러간다. 지방으로 축적되거나, 만성 염증으로 남는다.






이런 조건들이 겹치면서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폭식이 반복되거나,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패턴에 빠지기 쉽다. 다이어트도 계획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몇 끼니 굶는 방식으로 하고, 운동도 한꺼번에 미친듯이 했다가 아예 안하면서 폭식이 터진다. 충동성은 음식을 선택할 때도 반영되어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만 찾고, 식습관 뿐만 아니라 각성문제로 인해 수면의 질도 낮아진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불안정해지는데, 여기에 정서적인 요인이 더해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 이해받기 어렵다는 고립감, 노력해도 나만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 이런 감정 상태에서 가장 싸고 쉽게 손에 잡히는 위안은 자극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체중이 늘어나면 곧바로 좌절감이 찾아온다. 그다음은 극단적으로 적게 먹는 다이어트, 그리고 더 강해진 음식 집착.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은 의지로 끊기 어렵다.


ADHD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상상 속의 만족감과 실제의 맛이 다르고, 먹는 순간에도 ‘살찔까 봐’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이 정도가 되면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나기 어렵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먼저, 식사 시간을 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네 끼를 알람으로 맞추고, 가공식품을 줄이며, 규칙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섭식 문제는 ‘제대로 먹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올라오는 충동과 감정의 파동을 다루는 힘, 그리고 그동안 음식을 감정 조절 도구로 사용해온 방식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바꿔가는 작업이 함께 필요하다. 심리, 영양, 신체를 동시에 다루는 다각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나 역시 도파민에 완전히 휘둘리던 시기가 있었다. 10년 가까이 먹고 토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지금 돌아보면, 폭식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구토라는 행위로 과도하게 흥분된 신경계를 가라앉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뇌에게 갑자기 “이제부터 건강식만 먹어라”라고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도기가 필요하다. 그 과도기는 한두 달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1~2년은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완전히 끊기보다는,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도파민을 채워줄 ‘도피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불닭소스였다. 자극적인 음식이 당길 때, 한식을 먹으면서 불닭소스를 조금 곁들이는 방식이다. 불닭볶음면을 먹는 것과는 영양학적으로 전혀 다른 선택이다. 이렇게 신경계를 달래면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다. 물론 대안은 소스 외에 초콜릿도, 커피도 있었다. 핵심은 무조건적인 절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요령 있게 달래며 지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인플루언서나 건강론자들을 보면 사실 그들 역시 꽤 힘들어 보인다. 먹지 말라고 말하지만, 인간인 이상 먹고 싶은 욕구는 생긴다. 먹고 나면 죄책감이 오고, 다시 불안해진다. 이 상태가 반복될수록 몸도 마음도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이 세운 기준을 스스로 어겼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곧바로 공격한다.


“봐라, 너도 못하잖아.”


당연한 반응이다. 불가능한 것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듯이 가르쳐 온 거니까.

'나는 할 수 있는데 너흰 못하잖아'하는 우월감으로 오랫동안 버텨왔으니 더 크게 무너진다.



ADHD가 많이 먹지 않는데도 살이 찌는 이유도 비슷하다. '현실적인 기준'을 스스로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늘 '과도한 계획'을 세우고 제한하고 참다가 그 욕구가 폭발하면 같은 칼로리라도, 더 자극적이고 도파민이 크게 튀는 음식을 선택하게 된다. 계획 없이 배고픔을 극단까지 끌고 갔다가 먹는 패턴은 몸에는 최악의 신호가 된다. '규칙적으로 영양공급이 안되니까 들어올 때 최대한 저장해놓자'는 신호를 보내게 해서 살찌는 체질이 되고야 만다.


그래서 식단은 ‘참는 계획’이 아니라 계속 먹고 싶게 설계된 구조여야 한다. 밀당을 잘 하는 식단, 밀당을 잘 하는 일상 루틴. 그게 장기적으로 가장 강력하다.


결국 중요한 건 이것이다.


식욕을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가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것. 그 신호를 읽을 수 있게 되는 순간, 다이어트는 싸움이 아니라 조율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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