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죽자
예전에는 사람을 볼 때 늘 ‘위험한지 아닌지’부터 스캔했다.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 의미를 과하게 붙이고 혹시 나를 이용하지는 않을지, 언젠가 상처 주지는 않을지 미리 긴장하고 대비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은 위험한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지금 이 관계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가”를 먼저 보게 됐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관계에서 내가 더 노력해서 맞추려 하지 않게 됐고, 나를 안정시키는 관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 자신을 먼저 의심하던 태도였다.
“내가 예민한가?”, “내가 이상한가?” 라고 묻는 대신, “지금 내 신경계, 뇌, 몸이 과부하 상태인가?”를 살피게 됐다. 종교에서, 심리학에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한다. 인과는 결국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므로. 그리고 어차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바꿔서가 아닌, 나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해석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외부보다 내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십대의 10년 동안, 나는 섭식장애가 있었다. 뭔가 항상 허기진 느낌이었고, 그걸 외롭고 고독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 I인데도 일부러 사람을 과하게 만나고, 운동 동아리 활동을 하고, 집에는 잠만 자러 들어갔다. 혼자 있으면 또 외로워지고, 먹게 되고, 자책감에 시달리고, 토해서 몸을 축나게 해야 잠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외로움이 아니었다. 그건 ADHD 성향으로 인한 남과 다르다는 감각,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자극을 과도하게 흡수하는 신경계 상태였다. 그 모든 걸 나는 ‘외로움’이라는 말 하나로 묶어버렸고, 사람으로 채우면 해결될 거라 믿었던 거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공허해졌다. 매일 같은 친구들과 운동하고 새벽까지 같은 술집에서 술을 먹었더니 나중에는 직원이 '또 왔냐'고 했다. 나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놀았던 것 같다.
머리는 좋은데 집중력은 떨어지고, 공부는 대충하니까 스카이까진 못가고 서성한(이) 언저리에 관계와 사회성에 약해 연애도 못하고, 뭘 해도 공허하니 운동+술로 도파민을 쫓는. 그 때는 다 또라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연구원이다. 웃기는 일이다.
친구들에 섞여 몰려 다닐수록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나는 외로워서 먹은 게 아니라, 나를 온전히 사용할 방법을 몰라서 먹고 있었다.
뭘 어떻게 먹고,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일을 찾고 또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시기 미친듯이 살며 나를 갈아넣어보았던 것에 후회는 없다. 그 시기를 통해서 온전히 나를 이해하게 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