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싸우자
나는 ADHD, HSP, INTP의 조합으로 오랫동안 ‘과잉경계 모드’로 살아왔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겠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
감각이 예민하고, 도파민은 불안정하고, 관계 속에서 미세한 신호를 너무 많이 읽어내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 늘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섣불리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시댁 형제자매 대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따뜻하고, 선하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능력도 있고 똑똑한데, 자존감은 단단했고 과잉 자의식이나 피해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능력이 있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대체로 감정적이었고, 욕심이 많았고, 자기 이야기부터 하려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살아남는 걸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언젠가는 본색이 나오겠지.’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은근히 깎아내리겠지.’
그런데 13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아픈 남편과 아이 때문에 귀촌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나를 보면 안쓰럽다며 용돈을 쥐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조건도 거래도 없이 그냥 선의로 대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특별히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나는 여전히 ‘남’인데도.
이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천사 집단’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능력 있고 똑똑해도 따뜻할 수 있고, 피해의식이나 과잉 자의식 없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사람 때문에 많이 지치거나, 오랫동안 경계하며 ‘이런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경험을 쌓아보길 바란다.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늘 과잉경계 모드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쯤 떠올려본다면, 삶이 조금은 덜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좋은 환경에서 자랐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평생, 매일같이 들었던 엄마의 두 문장이 나의 성장환경을 대변해 준다.
“너는 왜 태어나서 내 인생을 힘들게 하니.”
“돈 없고 사는 건 지긋지긋하고 당장 죽고 싶다.”
엄마의 불안과 분노, 절망은 그대로 나에게 투사됐다. 엄마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한들, 어린 시절의 나는 가족이 겪는 모든 힘듦의 원인을 '나'로 귀인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많이들 겪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강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없이, 말없이, 눈물 한 번 없이 버텼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살았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부모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효도도, 사랑도 아니다. 그건 역할이 뒤바뀐 ‘정서 노동’ 일뿐이다.
부모의 감정은 자식이 받아주는 만큼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옮겨지는 만큼 더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국 자식을 무너뜨린다.
진짜 효도는 부모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감정을 다 받아준다고 가정이 평온해지지도 않고, 누구의 상처도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오래 사람을 경계하며 살아온 이유도, 세상이 늘 위험해서가 아니라 내 신경계가 항상 전투태세로 살아왔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걸 알아차린 뒤, 사람을 보는 눈도,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