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그동안 엉켜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툭’ 하고 하나로 묶이는 느낌.
T가 F 쪽으로 한 발 옮겨온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여전히 INTP이긴 하다.)
사람들은 화음으로 듣지만, 내 귀에는 악기 하나하나가 전부 따로 들린다. 이상하게도 진짜 연주 전에 들리는 악기 조율하는 삑삑 소리는 정말 좋아한다. 그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유는 ADHD 뇌는 예측 가능한 규칙적인 패턴이 들어올 때 오히려 더 과부하가 걸린다. 뇌가 패턴을 해석하려고 과하게 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율 소리처럼 규칙이 없는 노이즈에 가까운 소리는 뇌가 긴장을 풀어도 되는 신호가 된다. 이건 ADHD의 ‘감각 통합’ 문제다. 자극이 하나로 묶여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원래 맛을 잘 못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맛이 하나로 느껴지지 않았다. 김밥, 피자, 햄버거처럼 여러 재료가 섞인 음식이 특히 싫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재료 하나하나가 전부 따로 느껴져서 통합된 ‘하나의 맛’이 아니라 엉망진창의 맛으로 들어왔다.
햄버거를 먹으면 고기 비린내, 야채 비린내와 다른 맛들이 같은 크기로 등장하는데, 비린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니 이미 구역이 (속으로) 한 번 치민 상태라 다른 맛을 즐기지 못한다.
맛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린내가 이미 뇌를 장악한 상태에서 ‘실제 맛’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늘 울렁거렸다. 김밥의 김 비린내, 물의 비린내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고 하면 이 감각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까. 뷔페는 자극이 많아서 흥분 모드로 들어가지만 여러 가지를 섞어 먹는 순간 모든 게 김밥 맛이 된다…
까다로운 것 같지만 어이없는 건, 초가공식품은 또 잘 먹는다. 하핫; 과한 자극이 들어오면 감각은 차단되고 도파민만 튀기 때문이다. 그래서 ADHD는 식사 루틴이 쉽게 무너지고, 폭식, 야식, 단 음식으로 가기 쉽다. 식사 관리가 어려운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기본 구조가 그렇다.
존스홉킨스 정신의학과 지나영 교수님도 유튜브에서 본인 역시 식사 관리가 어려웠다고 말하더라.
오래도록 감정을 말로 써보고, 단순하고 자극이 낮은 식사로 호르몬을 지속적으로 훈련시키고, 그걸 계속 정리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뇌가 지지직— 하면서 통합되는 순간이 오더라. (뇌가 훈련시킨다고 될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그래서 SNS 상의 스친들에게 “뇌가 한 번에 탁 정리된 적 있어?”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반대야. 극 F였는데 T적인 사고를 하는 나를 발견했어. 신경회로가 뚫리는 것 같고 뒤통수에 전기 오는 느낌. 우리 둘 다 ‘신경가소성’을 경험한 거 아닐까
심지어 한두명이 아니었다. 나만 겪은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 이후로 많은 게 달라졌다. 뇌 통합을 거친 이후, 처음으로 햄버거가 맛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인스턴트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수제버거였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뭘 먹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을 듣고 감정을 느끼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관찰하고 대처할 수 있었고, 통찰력(육감이 너무 발달해서 괴로운 사람이었다. 모든 소리를 다 듣는.)은 더 뾰족해져서 원하는 것만 골라 취할 수 있게 됐다.
맛을 못 느꼈던 것도, 음악이 불편했던 것도, 사람들보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감지했던 것도, 고장이 아니라, 조율이 덜 된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예민했던 게 아니라, 내 뇌가 아직 하나로 묶이지 않았던 것이고,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도 확신하게 되었다. 통합이 일어나면, 그 과잉은 폭주가 아니라 정밀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