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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성수동 그리고 프라이데이 나잇

아줌마 아저씨는 손잡고 두리번두리번

by 고민베어 이소연
성수동 카페거리
금요일 밤이다.

허둥지둥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왔다. 10년 전, 신혼집이 있던 동네다. 아무것도 없던 동네였다. 갈 곳이라고는 성수동 이마트가 전부였고, 이마트 안에 공차 들어왔다고 좋아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십 년 만에 아줌마 아저씨가 된 우리 곁으로 크롭티를 입은 힙한 젊은이들이 지나간다. 핫하다는 브랜드의 간판들을 스캔하며 곁눈질하다 자꾸만 발을 헛디딘다. 골목골목, 줄이 길게 늘어선 맛집들을 스쳐 지나갔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야 하는, 제일 조용한 식당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랜만에 서울 맛. 빨간 맛.

시간이 촉박해 항정살 덮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서 턱이 빠져라 씹고 있는데 옆에 앉은 손님들이 하는 대화가 들려온다. 디자이너인가 보다. 하이볼을 한 모금 머금더니 젓가락으로 그릇을 톡톡 치며 말한다.


“이직해서 처음 출근했는데, 디자이너가 두 명 밖에 없는 거야. 말이 돼? 업무 프로세스고 뭐고 정리가 돼 있을 리 없는 거지.”

“모르고 들어간 거야?”

“몰랐지. 이미 들어가 버렸으니 뭐 어쩌겠어. 어떻게든 더 버텨야지.”


성수동엔 놀러 온 사람들은 직업도 힙하구나, 입 안의 것을 다 삼키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한 걸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성수동 카페거리 한복판의 데어바타테. 브랜딩을 다루는 공간, 성수동 고구마밭이다.



우리끼리 하는 일들이 과연 맞는 방식일까

남편과 나는 우리끼리 온라인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책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지, 브랜딩을 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지 알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브랜딩 관련 책 전시와 함께 북 토크를 한다고 해서 찾아왔다.


북 토크의 강연자는 브랜딩의 교본으로 불리는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의 저자 홍성태 교수님이었다. 교수직을 은퇴하신 나이이신데도 카라티에 야구모자를 쓰고 강의하신다. 그런데 그게 참 잘 어울리신다. 브랜딩을 브랜딩하고 있는 거다. 자신의 말과 글과 행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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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바타테에서 진행된 브랜딩을 주제로 한 북토크


강의 내용은 두 가지로 함축된다.

브랜딩의 시작은 네이밍이다

고착화된 생각을 우리가 만든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꾸어라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린아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 이름 붙일 것,
그리고 그 새로운 생각이 사람들에게 스며들 때까지 밀어붙일 것.


내용은 브랜딩의 기초적인 내용이었지만 하고 있는 작업들을 재점검하게 하는 기회였다. 강의 자체보다도 우리는 사람들과 분위기에 집중했다. 그들이 현재를 대하는 태도라던가, 눈빛과 열정이라던가.




브랜딩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경영학(정확히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한 번에 많이 본 것이 처음이다. 동종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도 통계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섞여있지만, 전체적인 색깔은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교수님부터도 심리학 교수님들과는 참 많이 달랐다. 심리학 교수님들은 학문과 연구 자체를 굴착기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라면, 마케팅 쪽은 학문을 둘둘 감아 자신을 포장한다는 느낌이다. MBTI의 E와 I의 차이와 비슷하달까. (외향과 내향은 에너지의 방향이 바깥을 향해있는지, 자신 안으로 향해 있는지를 가리킨다.)


반면에 강의 참석자들인 마케팅 실무자들은 의외로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80여 권의 브랜딩 책들이 있었는데 참석자들은 대부분의 책을 다 갖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브랜딩에 관련된 책의 판매량이 높다는 것을 봐도 ‘브랜딩을 책으로 공부했어요’의 비율이 높을 거라 짐작이 된다.

경영학 수업이라 하면 토론식 수업을 상상했지만 의외로 질문도 많지 않았고,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물론 퇴근하고 달려오신 분들이라 피곤했을 테지만)


차분히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고객들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사고의 전환을 하는 과정은 에너지의 방향이 안으로 향해 있을 때 더 효율적인 것일까, 싶었다.


마케팅으로 보이는 것이 소통과 눈에 꽂히는 디자인이어서 그것을 하는 사람들도 왁자지껄하리라 예상했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구나, 하면서 조급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좀 더 세상을 관찰하고 흐름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성수동 공기도 브랜딩 된 거람서요?


사실 강의에만 기대를 하고 왔는데, 성수역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가 경험의 시작이었다. 예전과 다른 공기, 발걸음, 눈빛, 소비의 형태와 소통의 방식까지. 예전 일본문화를 보는 것 같달까. 사람들은 좀 더 가라앉아있었고,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개인주의적이었으며, 타인에게 눈길 하나 주는 이가 없었다. 쾌락을 좇아 욕망에 들뜬 이는 없어 보였다. 힙한 차림새를 하고도 무신경한 눈빛이다.


단 10년 만에 이렇게까지 많은 변화가 있는 데는 코로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실에 집중하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는. 트렌드보다 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남들이 나를 보는 것보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한 테이블에서 직장인 여자 셋이 상기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의자 끝에 걸쳐 앉아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게 ESTJ라고?”

“아니 ESTP가 그렇다고”

“아, 그러니까 ESTP가 어떻다고?”

“모험을 즐긴대잖아. 무턱대고 해보는 거야. 사고 잘 치는 스타일이지.”


좀 전, 브랜딩 강의에서도 언급된 바 있었던 MBTI다. 요즘 MBTI를 모르고서는 대화가 어렵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검사가 이제 와서 왜 난리일까.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가도 행복을 찾지 못했으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기 위한 수단이리라.


이 모든 것이 브랜딩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의미와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것. 나의 성향을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누군가가 흉내 내지 못할 내 스타일을 만드는 것. 성수동의 문화는 브랜딩 그 자체였다. 의미 있는 개인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같은 주제를 향해 공동의 의식을 만들어가는 놀이터.


밤은 저물어간다. 성수동 거리는 차분하다. 술에 취해 소리치는 사람 하나 없다. 약한 도수의 술잔을 조금씩 홀짝이며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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